[솔트레이크 스타]이천군-양태화 커플 '아름다운 꼴찌'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3분


한국의 이천군(왼쪽)-양태화조가 18일 열린 아이스댄싱 오리지널프로그램에서 열연하고 있다.
한국의 이천군(왼쪽)-양태화조가 18일 열린 아이스댄싱 오리지널프로그램에서 열연하고 있다.
은반 위엔 비제의 카르멘이 흐르고 있었다.

서양선수들이 지배하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싱에서 낯선 동양인 커플은 진지한 얼굴로 연기에 빠져들었다. 둘은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스텝을 밟아 나갔다. 하나, 둘, 셋…. 리듬감이 있었고 때론 과감하기까지 했다.

한순간 실수는 있었다. 파트너의 스케이트 날에 바지가 걸려 잠깐 멈칫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은 이 커플은 더욱 밝은 표정과 힘찬 동작으로 은반을 헤집고 다녔다.

연기가 끝나고 음악이 멈췄다. 관중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아이스링크 위엔 그들이 던진 꽃이 널려 있었다. 커플은 열광적인 함성에 네 차례나 고개숙이며 인사를 하고 감사의 표시를 했다.

잠시 후 전광판엔 6점만점에서 4점대의 점수가 나왔다. 4.0, 4.1, 4.2…. 한 심판은 3.7의 점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커플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그래, 올림픽이잖아.’

18일 아이스센터에서 열린 2002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싱 오리지널에 출전한 이천군(22)-양태화(20·이상 한양대)조.

이틀 전 컴펄소리에서도 24개팀 중 최하위였던 이-양조는 이날도 꼴찌에 머물렀지만 경기가 끝난 뒤의 얼굴은 한층 밝았다. 유종현 코치도 “잘했다”며 둘의 등을 툭툭 두드려 줬다.

이천군은 “나머지에선 실수가 없었는데 하필 그때 바지가 걸릴 게 뭐예요. 차라리 연습할 때나 그런 게 나왔어야 하는데…. 이런 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죠”라며 웃었다.

아이스댄싱은 국내엔 생소한 종목. 이-양조를 포함해 국내에 3개조(2개조는 주니어)밖에 없을 정도로 선수층이 얇다. 당연히 연맹의 지원이나 팬들의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하는 ‘비인기 종목’ 가운데 하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제대회에 나가면 설움도 많이 겪는다. 최근의 ‘판정 스캔들’에서 드러나듯 피겨스케이팅은 심판이 순위를 절대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종목이지만 아이스댄싱의 ‘불모지’인 한국은 단 한 명의 국제심판도 없어 불이익을 많이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티켓을 따낸 이천군-양태화조는 그야말로 대견한 선수들. “올림픽에 나서게 된 것은 정말 기적적인 일”이라는 유 코치는 올림픽에 앞서 선수들에게 “그냥 즐겨라”고 당부했단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죠. 많은 관중과 아이스링크, 그리고 피겨를 사랑하는 사람들…. 한편으론 생소하기도 했어요. 우리가 언제 이런 관중 앞에서 박수를 받아볼까 하고요. 우린 겨우 7년 정도 걸음마를 했을 뿐이에요.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정말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아마 많이 배우라는 의미에서 우리들에게 올림픽 출전의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올림픽 무대에 오른 감동을 담담하게 전한 ‘아름다운 꼴찌’ 이천군-양태화조. 이들은 19일 프리스케이팅 경기에 마지막으로 나선다.

솔트레이크시티〓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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