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국회-검찰, 국민 잊지말라

  • 입력 2001년 12월 9일 17시 50분


검찰총장에 대한 야당의 탄핵발의가 검표단계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과반수에 1표가 모자라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자민련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투표결과를 미궁에 묻어둔 채 마무리지은 것이 어쩌면 다행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정파이익 위한 놀이터▼

다행하기로 말하자면 어디 거대야당 뿐이랴. 자민련으로서는 제 3당의 존재와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무산이 곧 무의미를 의미하지는 않았으리라. 검찰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고, 소수여당도 체면은 건진 셈이다. 여당의 감표 불참으로 야기된 코미디 같은 무산작전으로 모든 정치 이해당사자들에게 괜찮은 결과를 가져다 준 셈이다.

문제는 국민의 눈이다. 국회의 경망스런 행태를 보는 국민들의 눈에서 씁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 정부 들어와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발의를 다반사로 한 한나라당은 실제 당사농성이나 방탄국회를 통해 검찰의 법 집행을 마구 뒤흔들어댄 장본인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그 대가를 지급할 때가 오리라고 본다. 누구도 정치가 법 위에서 법치를 농단한다는 인상을 갖도록 백성을 오도해서는 안될 일이다. 공동여당에서 떨어져 나온 자민련은 선택적인 정책 공조를 표방하고 있지만, 무엇이 자민련의 정체성이요 원칙인지 아직 국민들은 알기 어렵다. 원칙 없는 선택적 공조가 자칫 기회주의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을까 염려된다.

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정책실패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 안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임한 마당에 민주당이 독자적인 비전을 갖고 얼마만큼 독립적인 행보를 내디딜 수 있을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거야와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도 주목거리다. 이번 탄핵파동에서 여당이 보여준 꼼수는 근본적인 당내 정치개혁을 통해 민주정당으로 거듭나려는 최근의 쇄신노력에 대한 신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결코 정파의 이익을 다투는 정쟁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이익과 공공선을 위해 대결과 논쟁을 벌이되, 이성에 이끌려 대화와 대타협으로 승화되는 곳이어야 한다. 거기에서만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예산국회가 파국의 불씨를 지피며 또다시 세월을 허송할까 솔직히 두렵다.

정치는 그렇다 치고 검찰은 또 어떤가. 오늘날 검찰이 정치권의 말발굽에 거듭 뒤채이는 수모는 검찰 상층부가 스스로 정권의 시녀이기를 자임해온 오랜 타성이 빚어낸 자업자득의 면이 없지 않다. 잃어버린 것은 이제 검찰의 권위와 명예만이 아니다. 검찰의 숭고한 직무의 공정성과 독립성, 그리고 국민의 애정과 신뢰까지다. 검찰이 외풍에 시달리는 이 같은 풍토를 바꾸자면 검찰 스스로 냉철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검찰이 진정 준사법기관으로서 품위를 지키려면 무엇보다 먼저 검찰총수부터 법치이념의 세례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하여 검찰이 법의 소리에 순응하여 정의가 역사 속에서 구현되도록 헌신해야 한다. 이 일의 중요성은 조직의 통솔력보다 우선한다. 만약 그럴진대, 앞으로 검찰총수는 임명절차의 완성도를 높이는 차원에서도 시민 참여의 길이 열린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해야 한다. 반드시 국회의 인사 청문회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의가 있는 검찰돼야▼

더 나아가 이렇게 임명된 검찰총수는 정치까지도 법의 지배아래 있게 해야 한다. 법의 지배가 권력의 최정상과 권력의 핵심까지 파고 들어가, 거리에서도 정의가 구가되며 공평이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바로 이런 검찰을 소망하고 있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검찰이 아니라, 강한 자와 약한 자 구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의의 빛을 두루 비추어 줄 그런 검찰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길 따라가는 시민이면 누구나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법의 세계를 검찰은 국민들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이건 권력기관이건 중한 불법을 행하고는 안연히 이 땅에 거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의 눈은 검찰이 최근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권력기관의 배후를 어떻게 파헤칠 지에 쏠려 있다. 심기일전하여 믿음직한 검찰상을 국민의 인식 속에 심어주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김일수(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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