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새 실험대/中]與-野-政 '열린 협력' 절실

  • 입력 2001년 11월 12일 18시 23분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구수회의를 갖고 있는 국무위원 및 수석비서관들.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구수회의를 갖고 있는 국무위원 및 수석비서관들.
현직 대통령의 전례 없는 집권당 총재직 조기(早期) 사퇴는 행정부와 국회, 행정부와 각 정파간의 관계에도 변화의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가 국정운영에 관한 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 위에 군림해온 국정운영구조의 ‘낡은 틀’을 일거에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글 싣는 순서▼

- 上. DJ 당총재 사퇴후 첫숙제
- 中. 與-野-政 '열린 협력' 절실
- 下. 야당은 어떻게 변해야하나

우리나라의 헌법은 삼권분립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헌정사의 현실은 집권당 총재직을 겸해온 대통령이 공천권을 통해 의원들을 통제하는 ‘당정일체의 권력구조’ 아래 여당이 사실상 청와대의 ‘전위대’역할을 수행해온 것이었다.

당정간의 고리를 이어온 채널인 당정협의 제도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이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 여당과 미리 협의절차를 거친 뒤 여당의 ‘수의 힘’으로 국회통과를 관철시키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었다.

문제는 새로운 국정운영의 모델이 미리 준비돼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추어 행위 당사자에 해당되는 행정부와 국회 및 각 정파가 이제부터 모색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와 행정부간의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경우 ‘임기말 권력누수현상만 심화될 뿐 다시 소모적인 권력게임에 빠질 게 뻔하다’는 우려가 전문가들로부터 나오는 것도 거꾸로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 이 같은 우려는 여권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민주당 김기재(金杞載) 상임고문은 “공직사회는 이제부터 (차기 정권이 결정될 때까지) 긴 낮잠에 들어갈 게 뻔하고 국회도 그냥 상황에 따라 떠내려갈 뿐”이라고 걱정했다.

아무튼 초당적 국정운영의 틀을 마련하는 것은 단순히 김 대통령의 총재직 조기사퇴라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일시방편이 아니라는 데 절박성이 있다. 이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환경에 대응해 강소국(强小國)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치체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절실한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그동안 재계 등으로부터 ‘정치 3류국가’‘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것도 생산적인 국정논의구조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으로서도 당장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당적 협력아래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 새로운 국정운영장치의 안착은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할 법안으로 △교원정년 연장 △남북협력기금법 △재정3법 △인사청문회법 △방송법 등 5가지를 꼽고 있다. 특히 이들 5개 법안의 대부분은 현 정부가 개혁정책으로 추진해왔던 것을 사실상 거꾸로 돌리는 것이란 점에서 새로운 여야관계를 실험해 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직후부터 청와대에서 △여 야 정(與野政) 경제정책협의회를 활성화하거나 △야당과의 당정협의제를 신설해 초당적 협력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안 등이 흘러나오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 이만섭의장 인터뷰

청와대 일각에서는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처럼 대통령이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 TV에 출연, 국민을 직접 설득하고 다른 국정현안은 아예 여 야 정 협의회에 맡기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자칫 또 다른 포퓰리즘(대중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을 만드는 첫걸음은 특단의 조치나 수단을 강구해 내는 것보다는 이미 헌법의 정신이 규정하고 있는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정신을 존중해 각 권력기구가 ‘제자리 찾기’에 나서는 것이란 지적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여야의 의견이 맞설 때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 나가 시정연설 등을 통해 의원들을 설득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계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국회를 국정논의의 장으로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통령의 초당적 국정운영 의지에 대한 신뢰 여부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의 한 청와대수석비서관은 “김 대통령이 총재직뿐만 아니라 정권재창출 의지를 완전히 버려야만 정당들도 김 대통령을 행정부의 수반으로 신뢰하게 될 것이며, 그래야 국회와 정부가 건강한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혁·부형권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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