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 이야기]카지노 증시, 도박판 정치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56분


‘종황’이라는 필명의 한 재미언론인이 몇 해전 펴낸 책 ‘카지노 정글’에는 한국인의 도박 행태가 적나라하게 기술돼있다.

저자는 오랜 기간동안 라스베이거스, 리노 등 미국의 카지노타운을 찾는 한국인의 도박성향을 관찰하고 카지노 종사자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한국인은 타민족에 비해 카지노 도박을 가장 위험하게, 그리고 했다 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하는 민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동에서 번 돈 2700만달러를 몽땅 라스베이거스에서 날려버린 한 기업인의 일화는 라스베이거스에 ‘신화’로 남아있을 정도라고 필자는 소개했다.

내국인 전용 카지노 ‘강원랜드’가 벌써 개설 1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강원랜드는 개설 직후부터 강원도 일대에 카지노 열풍을 일으키더니 최근에는 여의도에까지 카지노 바람을 몰고왔다.

강원랜드가 몇 차례 도전 끝에 코스닥등록 심사를 통과하자 지분 보유 업체들의 주가가 크게 치솟았다. 크게 연관없는 업체들이 ‘카지노 테마주’로 치장되기까지 했다. 증권가에선 “코스닥에서 카지노 바람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별달리 부각되는 테마가 없는 상황인데다 또다른 카지노업체와 복권업체 등 사행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들이 속속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증권가에 카지노 바람이 부는 동안 여의도의 한쪽 편에는 아예 카지노판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막말도 서슴치 않으며 쌍방간 폭로전을 벌이는 모습은 카지노에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무모하게 베팅을 하는 모습과 별반 다를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

증권정보 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의원들이 아예 국회를 ‘도박장’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한쪽에서 의혹을 폭로하면 다른 편에서 이를 받아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폭로전의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가 마치 각자 준비한 ‘판돈’을 있는대로 다 꺼내놓을 태세라는 것이다.

‘카지노 정글’에는 카지노에서 신세를 망친 이들의 사례가 여러 건 등장한다. 도박꾼들이 신세를 망치는건 단지 자신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깝게는 가족으로부터 주변 친지에 이르기까지 확산되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을 지지해준 ‘국민’이라는 가족을 염두에나 두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하나. 자신들이 내놓는 ‘판돈’이라는게 실체가 모호해 자칫하면 ‘사기 도박꾼’으로 낙인찍힐 위험도 있다는 점을 각오는 하고 있는 걸까.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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