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노인의 날

  • 입력 2001년 9월 29일 17시 47분


▷노인의 날 춘추시대 때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군사를 일으켜 정벌에 나섰다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앞으로 나가도 한참 가면 도로 제자리였다. 그러자 부하 관중(管仲)이 늙은 말 한 마리를 끌어다 고삐를 풀고 앞장세웠다. 환공은 말이 가는 대로 따라가 무사히 숲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의 설림(說林)편에 나오는 이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사는 노인의 지혜를 얘기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나라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는 옛말처럼 우리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경로(敬老)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효(孝)를 도리 가운데 으뜸으로 쳐 3대, 4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은 보통이고 아침저녁마다 자식들이 의관을 갖춘 뒤 부모를 찾아 문안을 드렸다. 병든 노모를 봉양하려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음식을 만들었다는 가난한 아들 이야기 등 효행을 소재로 한 설화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젊어서는 건강을, 늙어서는 백발을 자랑하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백발은 자랑거리가 못된다.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빈집에 내버리고 노모 모시는 문제로 형제끼리 싸우다 아들이 어머니와 동반자살까지 하는 판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노인이 필요없게 된 사회’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농경사회에서야 ‘체험의 지혜’가 생존의 규범이나 다름없어 노인이 윗자리에 앉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엔 구닥다리 취급을 면치 못하니 경로문화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노인이 7%를 넘어 고령화사회에 들어섰다고 한다. 고령화사회가 되면 국가의 생산력이 떨어지고 복지 비용은 늘어나는 등 갖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노인의 노동력을 살리는 게 해결의 상책이지만 예순도 안돼 일터를 떠나야 하는 우리로선 아직 꿈같은 얘기다. 마침 모레가 ‘노인의 날’이다. 올해엔 양로원에 선물 꾸러미만 들여놓고 그냥 돌아설 것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노인의 지혜와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일하는 노인은 젊어지고, 노인이 젊어지면 나라가 젊어진다고 하잖는가.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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