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봄날은 간다' 유지태 "연기로 내 색깔 표현"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28분


“넌 키가 크니까. 배우말고 조명이나 무대감독을 맡아라.”배우 유지태는 큰 키(187㎝) 때문에 이런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에게 큰 키는 배우가 되는데 ‘장애물’이었다.

12일 저녁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 눈으로 대충 어림잡아도 남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한 청년이 특유의 ‘무공해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발렌타인데이에 가장 만나고 싶은 남성, 복제를 하고 싶은 배우. 99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시작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그 후 연예인과 관련된 각종 인기 조사에서 ‘넘버 원’의 자리를 다투었으며, ‘동감’ ‘가위’ ‘리베라메’ 등의 영화에 출연해 두터운 팬 층을 확보했다.

28일 개봉되는 영화 ‘봄날은 간다’로 1년 만에 팬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를 만났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극중 상우 역의 유지태가 연상의 여인 은수(이영애)에게 던지는 대사. 묵묵히 듣던 은수의 대답은 짧게 “헤어져”였다.

유지태는 “사랑의 열병을 겪은 한 남성이 시간이 흐른 뒤 사랑했던 여인을 다시 만나지만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영화 줄거리의 일부를 소개했다.

이 작품은 녹음기사 상우와 지방 방송사 라디오 PD 은수의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은수는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상우를 처음 만나게 된다.

허진호 감독의 이전 작품 ‘8월의 크리스마스’가 두 남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사랑이 깨진 뒤’의 상처를 담았다. 이 작품은 최초의 한국 홍콩 일본 3개국 합작 영화로 싸이더스와 일본 쇼치쿠, 홍콩 어플로스 픽처스가 공동으로 투자 배급을 맡았다.

▽“아무나 하나요.”〓유지태는 이번 작품에서 테마곡 ‘그 해 봄에’를 직접 불렀다. 앞으로 가수 겸업까지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그는 “상우 역할에게 너무 빠져 노래까지 했지만 가수를 아무나 하나요”라며 펄쩍 뛰었다.

그는 인터뷰 중 ‘아무나 하나요’를 연발했다. 그러나 올해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연출 전공으로 입학하는 등 그의 관심 영역은 꽤 넓다. 사진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고, 요즘에는 3D 애니메이션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연출요? 꼭 메가폰을 잡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감독이 된다면 손님이 많아야 하는 상업 영화가 아니라 예술영화나 애니매이션을 만드는 감독이 될 겁니다.”

간호사인 그의 어머니는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고교(휘문고) 때 성적은 뒤에서 세는 게 훨씬 빨랐다고 한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선생님이 ‘네가 대학에 합격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했겠습니까. 어머니는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 딱 한번 반대하셨어요. 대학 진학 때 연극영화과(단국대)에 가겠다고 떼를 썼을 때 어머니는 처음 안된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나중에 뜻을 굽히시고 저의 열렬한 후원자가 되셨지요. 어머니의 그 후원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산 것은 너의 웃음.”〓몇 년 전 CF 촬영현장에서 겪은 일이다. 똑같이 웃는 표정으로 수백 컷을 찍었다. “꼭 이렇게 찍어야 하나”고 묻자 CF 감독으로부터 “우리가 돈주고 산 것은 너의 웃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씁쓸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CF를 두 편으로 줄였어요. CF보다는 영화를 통해 나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숫자로 드러난 영화의 흥행 성적과 관계없이 꾸준하게 연기자로 성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지태의 힘▼

아무래도 배우의 힘은 관객 수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 큰 키 때문에 ‘물 먹은’ 그가 배우가 된 것은 대학 선배를 따라 98년 영화 ‘바이준’의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오디션에 합격했고 ‘바이준’은 그의 데뷔작이 됐다

“‘바이준’의 서울 기준 관객은 3000명이었습니다. 힘든 출발이 날 강하게 단련시켰어요.”

그의 ‘파워’는 99년 ‘주유소 습격사건’(90만명)으로 급속하게 상승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동감’(32만명) ‘가위’(34만명) ‘리베라메’(54만명) 등 지난해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모두 안정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전국 800만명의 관객을 기록한 ‘친구’ 등으로 빛이 바랬지만 유지태의 ‘성적’은 수준급”이라며 “아직도 20대 중반의 젊은 배우라는 점에서 그의 힘은 계속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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