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국 철학의 모태 조명한 '도의 논쟁자들'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32분


◇도(道)의 논쟁자들 앤거스 그레이엄 지음 나성 옮김

743쪽 3만3000원 새물결

플라톤 철학과 서양철학사의 관계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함축적인 발언을 표절해서 말한다면, 중국철학의 역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선진(先秦) 철학의 각주다. 이것은 중국철학사에서 선진철학이 도달한 사유의 폭과 깊이가 그대로 이후 중국철학사의 폭과 깊이를 한계지운 요소였음을 뜻한다. 그만큼 선진철학사에 대한 이해는 중국철학사를 이해하는 데 언제나 필수적이다.

그레이엄의 이 책은 그런 중국 선진철학사의 지형도를 ‘철학적 관점’에서 세밀히 그려낸 영어권의 대표적인 저작에 속한다.

옮긴이도 언급하고 있듯이, 그레이엄은 서구의 중국학자들 중에서 한문에 대한 문헌학적 소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중국철학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송대(宋代)의 신유학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그는 곧 관심의 방향을 선진으로 돌려 선진철학사에서 뚜렷이 대비되는 스펙트럼인 후기 묵가의 합리주의와 도가의 반합리주의적 경향에 연구를 집중시켜, 서양권에서 아직도 이 분야에 대한 독보적인 저작으로 대접받는 저서들을 상재하기에 이른다.

선진철학사를 다룬 여타의 책들과 비교해 볼 때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이 두 진영, 즉 후기 묵가와 장자학파의 철학적 문제의식과 그 사유방식을 논리성을 갖춘 철학적 논쟁의 과정으로 제대로 조명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선진철학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면서도 그동안 언제나 턱없이 무시돼 왔던 명확한 분석적 분위기를 따라 선진철학사를 치밀한 철학적 사유들의 경연장으로 읽어보고자 한다면 이 책은 둘도 없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동안 일반론적으로만 언급되던 법가와 노자철학의 관계를 적절히 짚어주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이 지니고 있는 차별성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다루는 시대가 텍스트의 사료적 위상이 불안정한 고대이다보니 예기치 않게 저자의 시각이 흔들리는 측면도 있다. ‘노자’에 대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노자’를 ‘장자’보다 뒷시대에 배속시켜 선진철학사의 후반부를 서술하고 있다. 그 근거는 적어도 기원전 250년 전 ‘노자’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3년에 출토된 곽점(郭店) 죽간본 ‘노자’의 경우 그 하한선이 기원전 300년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점에서 1989년에 나온 이 책의 한계를 여지없이 폭로시킨다.

이런 부분들은 당연히 역자주를 통해 소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자주는 이런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본문과 특별히 구분되지 않은 채 불쑥불쑥 끼여 들어가 있는 인용문들도 책의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비록 원전의 체제가 그렇게 되어 있더라도, 우리의 관행에 맞게 인용문의 형식을 바꾸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완전번역이라는 덕목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마땅히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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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재(연세대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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