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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20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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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인 끌어안는 것도 짜증스러운 날에는 나무그늘에서 나누는 한담(閑談)만한 게 없다. 그마저도 사치인 도회지 사람에게는 선풍기 틀어놓고 방바닥에 배깔고 보는 산문(散文)만한 대용품도 없을 것이다.
올 여름에는 구비문학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김준영 선생의 구수한 입담이 제격일 듯 싶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썰렁 유머조차 팔순을 넘긴 노학자가 부리는 기지에 뺨을 맞고 줄행랑을 칠 일이다.
이 책의 압권이라면 저자의 전공이라할 수 있는 우리 민담과 속담에 대한 해설과 주석이다. ‘병신이 육갑한다’ ‘오쟁이 걸쳐놓고 남의 마누라 본다’ ‘계란에도 뼈’ 같은 우리 고사성어에 얽힌 일화나 ‘물(술)장사 삼 년에 궁둥이짓만 늘었다’ ‘초가 삼간 다 타도 빈대 죽는 것만 시원하다’는 속담이 배시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논에 가면 갈이(갈대가) 원수, 밭에 가면 바래기(바랭이풀) 원수, 집에 가면 시뉘 원수, 세 원수를 잡아다가 참실로 목을 매어 범 든 골에 놓고지나’ 같은 민요는 어떤가.
우리 선조는 아물려 때리는 시어미보다 미운 시누이를 꼬집는데도 기지를 발휘했는데 날선 언어폭력을 자행하는 정치인들은 그의 눈에는 영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맹자가 말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는 자주 인용하지만 ‘가랑잎이 솔잎보고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는 속담은 단순한 비유로 무시하는 지식인의 행태도 마뜩찮기는 매일반이다.
저자는 해학이 넘치는 민요 설화 속담은 단순한 웃음거리로 그치지 않고 우리 국민의 두뇌가 명석한 증거로 삼는다. 익살을 부리거나 남을 은근히 꼬집는 기지는 둔한 사람에게는 찾을 수 없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삶을 긍정하는 지혜와 힘든 때일수록 자신을 관조할 줄 아는 여유는 번잡한 일상에 치여사는 이들에게 시원한 나무그늘이 되어줄 것이다. 만년 ‘술꾼’임을 자처하는 그가 “술을 끊으면 살맛이 없고, 먹으면 해롭고 그야말로 도깨비가 두꺼비를 보고 우는 격”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그러하다. “술꾼이면 식도락을 겸해야 한다”고 살뜰하게 조언하는 모습에서 ‘현명한 쾌락주의’의 일단을 슬쩍 엿볼 수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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