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의 명품이야기]랄프 로렌

  • 입력 2001년 7월 12일 19시 12분


옷을 잘 입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유행에 민감해 변화무쌍한 패션을 즐기는 사람과 유행에 민감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을 내는 사람이다. 랄프 로렌은 후자를 타깃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다.

20세기 초반 영국과 미국 상류사회의 전통적인 라이프 스타일, 미국 개척시대의 웨스턴 스타일, 옛날 영화들, 야구 선수들의 유니폼 등이 그의 디자인의 근원을 이룬다. 랄프 로렌은 한 번도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대중의 욕구를 가장 잘 읽어냈다. 성조기 문양을 넣은 디자인들은 후에 토미힐피거 갭 등에서도 인용되었고, 캐주얼 웨어를 기본으로 한 미국 스타일의 옷은 전 세계에 유행하였다.

랄프 로렌은 ‘라이프 스타일 머천 다이징’이라는 컨셉을 최초로 도입했다. 평일에는 우아하면서 편안한 슈트를 입고, 주말에는 별장에서 캐주얼한 차림으로 자연을 즐기는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광고와 매장 디스플레이 등에 이용하였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의 귀속의식을 자극하였고, 그것이 바로 랄프 로렌의 성공비결이었다.

그 자신도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다. 1939년 러시안계 유대계 이민 가정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랄프 로렌은 피츠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에 비교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이 1974년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을 때 랄프로렌이 의상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는 매장 점원으로 시작하여 1967년 폴로라는 브랜드로 넥타이를 팔고, ‘폴로 바이 랄프 로렌’이라는 이름으로 남성 패션의 독보적인 디자이너가 되었다. 폴로 바이 랄프 로렌은 1999년 4월 결산에서 소매가격으로 5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였다.그 외에 폴로 랄프 퍼플라넬 폴로진 등의 브랜드가 있고 세계에 4500여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랄프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폴 스튜어트의 회장 클리포드 그롯의 말처럼 랄프 로렌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미국인 대부분이 대통령부터 청소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랄프 로렌의 옷을 입고, 미국 디자이너로서 처음 파리에 매장을 연 랄프 로렌은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현숙(보석디자이너)client@jewelbutton.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