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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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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라고 해서 치외법권적인 성역이 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세금을 탈루했으면 세금을 물어야 하고,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했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고, 불공정 거래행위를 했으면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국세청과 공정위의 조사결과가 부분적이라도 사실이라면 반성도 해야 한다. 남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려면 자신의 잘못도 고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직업윤리가 강조되는 이유다.
그러나 만약 조사의 목적과 동기가 공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합법을 빙자하여 정부의 실정(失政)을 가장 많이 비판해온 동아, 조선, 중앙 등 이른바 ‘빅3 신문사’의 재정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 도덕성마저 훼손시켜 몰락을 유도하는 한편 독자가 몇 안 되는 친여(親與)지들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주기 위해 기획된 세무조사와 신문고시의 부활이라면 문제의 성격은 아주 달라진다.
국세청 발표를 보면 이번 사태를 ‘공정한 법 집행’ 대 ‘비판 언론 탄압’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몇 가지 교묘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조사의 착수 과정, 조사 인원, 조사 범위, 조사 기간, 빅3 신문사에 대한 추징 세액 등을 살펴보면 삼척동자라도 그 저의를 짐작할 수 있는데도 한사코 법에 의한 정기 조사임을 강변한다. 그러면서도 부풀리기 등 징세권 남용의 흔적이 엿보이고, 또 그동안 언론이 비판해온 여느 기업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탈세 수법을 언론도 사용했다는 사례를 적시함으로써 특히 언론사주의 도덕성을 흠집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정도의 오리발에 넘어갈 만큼 우리 국민이 바보인가.
앞날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결과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대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당국의 주장대로 공정한 법 집행인지, 아니면 비판 언론을 억압 또는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저의가 있었는지는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까지 유사한 사건에서 보듯 ‘미운 놈 조지기’식의 표적 조사, 법 적용의 잘못, 부풀리기 등이 자행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로 인해 당사자가 받은 물질적 도덕적 피해에 대해서는 반드시 조사 책임자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지금 한국 언론, 특히 비판 언론은 신군부 5공 정권의 언론 통폐합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언론사의 물질적 존재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인간 생활의 양태도 그렇지만, 언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지성적 활동의 범위와 질은 물질적 조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언론기업과 언론자유는 분리돼야 한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다. 비판언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상황이다.
셋째, 위기를 극복하는 또 다른 길은 이번 사태를 언론 경영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권력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있도록 언론도 잘못이 있다면 고쳐나가야 한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워낙 집요하고 교묘하게, 그리고 합법을 내세워 압박을 가해오기 때문이다. 정통성(legitimacy)은 합법성과 정당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신군부 5공 정권의 언론 통폐합도 합법적인 조건은 갖추었으나 정당성이 결여돼 결국 6월 항쟁으로 무너졌다. 역사상 언론, 특히 비판 언론을 억압한 정권 치고 성공한 정권은 없었다. 미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은 재임 당시, ‘독재자’ ‘악동(惡童)’, 심지어 ‘반역자’라는 비판을 언론으로부터 받았으나 법을 앞세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다. 만약 언론이 할말을 못하고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권력이 노리는 바일 것이다.
이민웅(한양대 교수·언론학 본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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