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요즘 고3교실에선 下]"교과서 공부도 벅차요"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40분


《지난달 16일 서울 강북의 한 인문계 고교 3학년 교실. 이날은 전교생이 토익시험을 치르는 날. 대학입시와 직접 상관은 없지만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영어를 가르친다는 학교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오전 8시경 3학년 1반 교실. 이미 등교한 20여명의 학생은 창가에 모여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거나 자기 자리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시작될 토익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경찰관이 꿈인 김모군(18)은 “토익은 내신성적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뭐 하러 공부하나. 내신에 50%나 반영되는 숙제가 더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숙제도 다 형식적이다. 다들 베끼고 있다”고 말했다.

강북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이 학교 학생들은 ‘토익’ ‘토플’ ‘유학’이라는 요즘 많이 사용하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이 학교 학생 가운데 저소득층으로 학비 감면을 받고 있는 학생은 200여명.

강남지역 일부 학교의 평균 20여명에 비하면 10배나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원보다는 학교수업이 더 우선시되고 있다. 또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비싼 단과반보다는 종합반 쪽이 많다.

▼수업중 몰래 라디오 들어▼

이는 강남지역의 고3 교실에서 ‘공교육 붕괴’현상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아직은 공교육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쩌면 강북의 고3 교실 모습이 전국의 일반적인 고3 교실의 모습에 보다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2교시 수학시간. 시작종이 울렸지만 교실 안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교사가 들어와도 웅성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교사는 조용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5분여가 지나자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은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해 보겠습니다.”

강의를 열심히 듣는 학생은 10여명. 나머지 학생들은 킥킥거리며 떠들고 몰래 라디오를 듣기도 하고 다른 과목 숙제를 하기도 했다.

3교시 작문시간.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중요성이 커진 탓인지 수학시간에 비해 많은 수의 학생들이 교사에게 집중했다. 유명 강사의 논술강의를 들을 형편도 못되고 전문 논술강의도 많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수업에 충실한 편이라는 게 교사의 귀띔.

김모군(18)은 “어머니가 강남에서 파출부로 일하시면서 생활비를 버는데 그 돈으로 강남 애들처럼 학원을 다닐 수 있겠느냐”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 학교급식이 일반화돼서인지 도시락을 꺼내 먹는 학생은 없었다. 한끼 식사에 2200원. 생선조림 콩나물 김 등 반찬이 푸짐했다.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학교를 대학 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학교생활도 괜찮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도 있고 학교생활이 즐거워요. 어디 가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어요.” 회계사가 꿈인 또 다른 김모군(18)은 점심시간을 특히 즐거워한다고 했다.

5교시 종이 울렸다. 국사시간. 점심을 먹고 난 학생들은 졸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 학생들에게 찾아왔다. 민방위 훈련이 시작된 것. 방송청취만으로 훈련을 대신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이동은 없었다.

▼"학교교육 아직은 괜찮아"▼

수업을 멈추고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방송을 듣고 있던 교사는 지금의 학교교육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각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사실 과거보다 학교교육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에요. 문제는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학교수업에 상대적으로 관심과 집중도가 떨어졌다는 것이죠.”

6교시 지리시간으로 이날 수업은 모두 끝났다. 박모군(17)은 “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아요. 학교수업이 끝나면 특기적성교육을 받고 학교에 더 남아서 자율학습을 해요. 집에 들어가면 밤 11시가 되죠”라고 말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 가운데 300여명은 오후 5시10분까지 학교에서 마련한 특기적성교육을 받는다. 주로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특별수업으로 구성된 이 교육은 희망자만 대상으로 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학원이나 독서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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