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외국인 돈줄기 바뀐다

  • 입력 2001년 4월 29일 18시 51분


외국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양상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들의 해외시장 투자 기준이 국가 또는 지역 중심에서 산업 또는 섹터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중 하나인 메릴린치는 최근 섹터나 거시테마를 글로벌마켓(해외시장) 투자전략을 짜는데 전면적으로 활용토록 하는 리서치 조직 개편에 착수해 이같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현실에서는 일찍이 이머징마켓(개발도상국)의 자본시장 개방과 함께 시작돼 점진적으로 확산돼온 도도한 흐름을 공식화하고 가속화하는 계기로 평가된다.

▽지역에서 섹터로=메릴린치는 이달 11일자로 글로벌 섹터 스트래티지스트(Global Sector Strategist) 라는 보고서를 냈다. 글로벌 섹터 스트래티지스트 라는 새로운 직제를 만들면서 낸 첫 번째 보고서다.

스트래티지스트는 지역, 국가, 섹터(산업에 대응하는 개념) 또는 종목별로 투자자금을 배분한다. 미국 투자은행에서 글로벌 스트래티지스트들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시장을 맡는다. 지금까지 이들은 지역이나 나라를 기준으로 투자자금을 배정해왔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앞으로는 지역이나 나라를 불문하고 섹터별로 자금을 할당하겠다 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이를테면 지금까지는 유럽 10%, 일본 3%, 이머징마켓 4%, 아시아태평양시장 3%… → 아시아중에서 한국 10%, 대만 15%, 홍콩 10%, 중국 10%,… →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30%, 한국통신 20%, 포항제철 15%,… 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앞으로는 글로벌마켓에서 반도체 40%, 통신 30%, 유틸리티(전력 가스 등) 10%,… → 반도체중에서는 삼성전자 30%, 현대전자 10%, NEC 10%, 대만반도체 5%…’하는 투자비중을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실로 20년만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으로 평가된다. 한 나라 안에서 업종별로 자금을 나눠 투자하는 것보다 나라별로 분산투자하는 것이 낫다 는 것은 70년대 중반 이후 국제금융계를 지배해온 주식투자 패러다임이었기 때문. 이같은 사고의 전환을 낳은 배경은 세계증시의 통합과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상품교역과 자본이동의 자유화로 지적된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과장(스트래티지스트)는 미국 이외의 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면서 영향력있는 투자은행에서 공식화한 만큼 미국투자자들의 섹터 중심의 해외분산투자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고 전망했다.

▽국내증시가 받는 영향=이같은 흐름에 따라 국가 위험도(Country Risk) 나 국가 신용등급 보다는 업황 등 업종변수가 국내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통신 등 국내 기술주들의 주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선진국 대표주들의 주가 움직임에 연동돼 출렁일 전망이다.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기술주가 국내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층 높아지게 된다. 기술주 부문은 국내 다른 업종들에 비해 더 높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기술주 중심의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뜻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주 몇몇종목과 나머지 군소주식들간의 주가 차별화가 극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 결과 종합주가지수나 코스닥지수의 의미는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증시를 중심으로 한 대세나 추세에 대한 분석은 매력을 점점 더 잃게 된다. 투자자들은 업종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많이 쌓아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게 된다. 동조화의 성격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지금까지는 나스닥지수의 등락에 따른 동조매매가 많았으나 이제는 산업 또는 업종별 동조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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