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비리 수사 본격화]"박노항-원용수 곧 대질"

  • 입력 2001년 4월 27일 18시 32분


박노항(朴魯恒)원사에 대한 병역비리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98년 구속됐던 원용수(元龍洙·57·구속중)준위의 이른바 ‘원용수 리스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방부 서영득(徐泳得)검찰단장은 27일 “박원사에 대한 병역비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현재 군교도소에 수감중인 원준위를 소환 조사할 것이며, 두 사람을 대질 신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 검찰이 ‘원용수 리스트’를 다시 파헤칠 뜻을 분명히 한 것은 당시 원준위의 수첩에 434명의 병역관련 청탁 인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박원사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군 검찰은 98년 당시 수사기록과 원준위의 수첩 명단에 대한 정밀 분석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원준위는 98년 검거되기 직전 박원사에게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피하라’는 내용의 쪽지를 전달했을 정도로 박원사와 깊은 관계였다. 이는 두 사람이 병역비리의 ‘공생 관계’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군 검찰은 ‘원용수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 중 금품수수 혐의가 확인된 사람은 당시 138명이었지만, 나머지 청탁자들 가운데서도 박원사와 관련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원용수 리스트’에는 현역군인 133명(현역장성 7명 포함)과 예비역 40명(예비역장성 6명 포함), 병무청 직원 60명, 전직국회의원과 변호사 대학교수 등 민간인 185명이 포함돼 있었다.

원준위 명단은 반부패국민연대가 지난해 2월 검찰에 제출한 120명의 병역비리 의혹자 명단과, 이후 검찰의 내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현역 국회의원 50여명의 명단과도 상당 부분 겹치고 있다.

당시 사정기관은 ‘원용수 리스트’ 등 관련자료를 군당국으로부터 넘겨받아 관련자들을 수사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술이 확보돼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 검찰은 박원사와 원준위가 유력인사와의 친분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그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원용수 리스트’를 최대한 활용해 거물급 인사들의 연루 여부를 캘 것으로 보인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박노항 "반성하고 있다"▼

국방부 서영득(徐泳得)검찰단장은 27일 “수사 초기에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던 박노항(朴魯恒)원사가 26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조금씩 협조하고 있다”고 말해 그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에 서서히 속도가 붙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원사는 27일 오전 11시7분경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단 조사실을 떠나며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아무 생각이 없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틀간의 밤샘 조사에 초췌한 모습의 박원사는 검거 당시 입었던 감색 운동복에 엷은 하늘색 슬리퍼를 신은 맨발이었으며, 수갑을 찬 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간간이 눈을 감았다.

○…박원사의 아파트에서는 그가 도피시의 심정을 낙서로 갈겨쓴 노트와 광고전단지 수십장이 발견됐다. 서단장은 “박원사는 자신의 혐의가 언론에 과장보도된 데 대해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썼고, 특히 자신을 체포하면 1계급 특진된다는 부분에는 ‘내가 강도짓을 한 것도 아닌데…, 죽고 싶다’고 쓰기도 했다”고 공개.

그는 이어 “박원사는 특히 자신이 억울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일부 낙서로 남겼다”며 “그러나 이를 ‘박노항 리스트’로 볼 수는 없으며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어 참고만 하고 있다”고 부연.

○…박원사의 낙서에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 흔적이 역력. 특히 자신이 구속되더라도 비밀을 굳게 지킬 것을 염두에 둔 듯 ‘Your secret is safe with me(비밀을 지킨다)’ ‘Mum’s the word(아무한테도 말하지마)’ ‘bundle(돈뭉치)’ 등의 문장(사진)이 발견돼 눈길.

○…군무이탈(탈영) 혐의로 구속된 박원사의 현역 군인 신분은 최종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돼 자동 전역되면 끝난다.

군인사법과 육군인사규정은 탈영한지 15일이 지나면 ‘탈영삭제(현역군인 명단에서 삭제)된다. 박원사는 98년 6월1일 탈영 보고돼 6월16일 탈영삭제됐다.

그러나 박원사를 군법으로 처벌하려면 다시 현역 신분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육군은 그를 ‘탈삭복귀’(현역신분으로 복귀)시켜 병적기록을 소속부대인 국방부 합조단으로 이송. 박원사는 앞으로 군사재판을 통해 형량 및 전역시기가 결정된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박노항이 영등포로 간 까닭은▼

박노항원사는 27일 현역 군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군 영창이 아닌 민간인 미결수들이 수용되는 서울 영등포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현역 군인이 민간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영득(徐泳得) 국방부 검찰단장은 이에 대해 “군 형행법 2조 4항의 ‘국방부장관이나 각군 참모총장이 필요에 따라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민간 구치소나 교도소에 구속 수감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헌병 병과인 박원사가 군 수사관으로 27년간 근무해 온 만큼 비공개 장소인 군 영창에 수감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앞으로 5, 6개월간 장기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헌병이 같은 병과 출신의 대선배를 지킬 경우 수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서단장은 “내일(28일)부터 재가동될 군검 합동수사본부가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설치되기 때문에 박원사를 소환조사하는 데도 영등포구치소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편리하다”고 덧붙였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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