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진흡/“바른 말 듣기는 싫지만…”

  • 입력 2001년 4월 3일 18시 36분


‘항공기 연발착, 운항 취소, 수하물 분실, 운항정보 전광판 마비.’

최근 외신을 통해 들어온 그리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국제공항’의 상황이다. 아테네에서 동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새로 지은 이 공항은 인천국제공항보다 하루 앞선 지난달 28일 문을 열었다. 당초 그리스 정부는 9월 초에 개항할 예정이었으나 ‘21세기에 오픈하는 첫 공항’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 5개월이나 앞당겼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이다. ‘새치기 개항’에 따른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

이 소식을 들은 건설교통부 고위관리는 “인천공항도 시스템을 준자동 체제로 돌리지 않았더라면 저 꼴을 당했을 것”이라며 “개항 전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것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고 고백했다. 개항 전 공항 비판 기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다른 관계자는 “그리스는 아무래도 언론이 약한 것 같아요. 신공항에 대한 비판 기사가 전혀 안나와 공항 건설 당국이 방심한 모양이네요”라고 거들었다.

개항 전 정부는 언론의 공항 비판기사에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의료재정파탄 보도에 이어 김대중 정부를 흠집내기로 작정했다”느니 “일부 언론사가 세무조사에 대응하기 위해 과장된 기사를 쏟아낸다”는 등 엉뚱한 정치적 해석을 하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는 대(對)언론 ‘입조심’을 강요하기도 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순조로운 개항으로 건교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며 “공사측이 비싼 장비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우려해 시스템 정상화를 앞당기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60년대 초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침공에 실패한 후 국익을 이유로 사전 보도를 자제했던 기자들에게 “왜 보도를 하지 않았느냐”며 원망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송진흡<이슈부>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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