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

  • 입력 2001년 3월 23일 19시 10분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류병학 지음/339쪽, 1만2000원/아침미디어

한국의 대표적 현대화가인 박서보.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추상화풍의 ‘묘법’이다. 그 묘법 시리즈는 언제 처음 시작됐을까? 박서보와 평론가 서성록은 묘법의 첫 제작시기가 1967년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빨라야 72년이라고 본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이 책은 박서보 이우환 서세옥 등 한국 현대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과연 언제부터 추상화풍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것. 저자는 이들의 활동 시작 시기가 왜곡되었다는 혐의를 잡고 글을 전개한다. 그리곤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박서보의 묘법이 67년에 시작됐다고 말한 최초의 사람은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이다. 그는 76년 서울 통인화랑 박서보 개인전 도록 서문에 67년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81년 현대화랑 개인전 서문엔 ‘10년 남짓 전’이란 표현으로 바꿨다. 88년 현대화랑 개인전 서문에선 ‘박서보 자신의 발언에 따르면’이라며 후퇴했다.”

저자는 각종 자료를 통해 볼 때 72년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화가보다 묘법을 먼저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뒤늦게 자신의 화집을 편집하면서 묘법의 시작연도를 조정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현대 추상화를 그려온 이들에겐 남들보다 추상화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연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이우환은 1993년 출판한 화집에 자신의 그림이 59년작이라고 수록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일본 미술잡지 ‘미즈에’ 1980년12월호에는 64년작으로 기록돼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미술평론가 겸 전시기획자. 세 화가의 동의를 받지 못해 그들의 그림을 수록하지 못한 점,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좋지만 다소 냉소적인 태도 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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