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노 샤우팅' 헌장

  • 입력 2001년 3월 23일 18시 36분


텔레비젼이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 회의장을 비출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삿대질을 하며 아유나 욕설, 고함을 치는 모습이다. 여기에도 항상 단골이 있다. 늘 보던 사람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야를 따로 가릴 것이 없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다말고 "또 그 친구야" 라며 혀를 찬다. 한 의원은 이들이 틈만나면 소리를 친다는 점에서 '샤우팅 맨 (shouting man)'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난해 총선시민연대가 공천부적격자와 집중낙선대상자를 선정했을 때 국회에서 상습적으로 야유나 욕설을 하는 사람이 명단에 많이 포함됐다. 총선연대는 이들을 저질의원으로 꼽았다. 실제로 이 명단에 들어 낙천이나 낙선된 사람이 없지 않았다.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은 지금도 국회만 열리면 수시로 '문제의원' 들을 겨냥해 "국회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다음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들 의원들이 야유나 욕설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자신의 그같은 모습이 비치면 이를 오히려 '훈장' 으로 여기는 것 같다. 또 모처럼 보스에게 '충성' 을 다했다는 뿌뜻함을 느끼는 것같다. 일부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의정활동보고서에 올리기도 한다. 정파별로 나뉘어져 있는 의사당의 좌석배치가 이들의 충성심을 부추기는 지도 모른다. 논리나 통계수치로 상대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먼저 큰 소리부터 처놓고 보는 우리정치의 후진성이 부끄럽다.

▷여야 3당 총무가 모여 4월 임시국회부터 회의장에서 욕설이나 폭언, 야유를 하지 않기로 하는 '노 샤우팅(no shouting) 헌장' 을 만들어 지키기로 했다. 이 헌장이 우리국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추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같다. 그동안에도 몇차례 비슷한 합의를 했지만 지켜지지않았다. 보스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한국의 금뱃지들에게 강제규정도 아닌 신사협정 하나 깨는게 무슨 대수겠는가.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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