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에는]손명원/대구 비슬산 암괴 보호구역 설정을

  • 입력 2001년 3월 15일 18시 36분


비슬산은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분지를 감싸안고 있다. 불국사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팔공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강건해 부성(父性)을 나타내며 안산암으로 이뤄진 비슬산은 형상이 부드럽고 온화해 모성(母性)을 띤다. 고위평탄면을 이루는 완만한 비슬산의 정상 부분에는 참꽃(진달래) 군락이 우거져 봄이면 온 산이 수줍은 분홍빛으로 장관을 이룬다. 대구시민을 비롯한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비슬산에는 대견사터에서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이르는 골짜기에 암괴류(巖塊流)가 약 2㎞에 걸쳐 뻗어 있다. 이 암괴류는 둥근 모양의 암괴(돌알)들이 마지막 빙하기에 서서히 흐르다가 멈춘 화석지형으로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15∼20도 경사에서는 세계 최대의 암괴류임이 밝혀졌다. 특히 톱바위로 이름 붙은 지형은 커다란 바위가 절리를 따라 부서져 애추(崖錐·절벽 밑에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돌집단)로 쌓이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슬산에는 이처럼 애추와 암괴류가 이웃해 분포하는 독특한 모습이 태고적 모습 그대로 간직돼 외국 학계가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는 이 천연의 암괴류 골짜기를 자연휴양림으로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암괴류 말단부를 깎아 도로를 개설하고 얼음동산 놀이터를 개장했으며 암괴류의 허리부분을 잘라 사방댐과 연못을 만드는 우를 범했다.

우리나라의 환경정책은 눈에 보이는 생물환경에만 치중해 그 생물의 서식환경인 동시에 시민의 정서함양에도 크게 기여하는 무생물 환경을 등한시해온 경향이 있다. 당국은 이제라도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하고 이 천혜의 기념물을 천연보호구역으로 설정해 보존하는 동시에 주변에 지형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조망대 등 체험학습장을 설치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이 지형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속내를 드러낸다. 이제 우리는 침묵하는 자연경관을 체계적으로 건전하게 보전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지혜를 배울 때이다.

손명원(대구대 교수·지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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