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생명의 파노라마

  • 입력 2001년 3월 2일 19시 14분


◇생명의 파노라마/말론 호아글랜드, 버트 도드슨 지음/황현숙 옮김/230쪽, 2만5000원/사이언스북스

접시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생선은 때로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 때문에, 바다 밑에서 잡혀온 저 녀석과 나는 비슷한 곳에 눈과 입이 있고 등뼈도 닮았을까.’

어머니 뱃속에서 손 발이 생기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보자. 수정된 뒤 발생 초기단계의 모습은 우리와 개구리, 뱀, 닭, 쥐 등 모든 척추동물이 똑같이 닮아서 전문가조차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그것만이 경이는 아니다. 판이하게 다른 생김새를 가진 생물들도 똑같은 메커니즘에 따라 살아 나간다는 사실이 20세기 과학의 발달로 증명돼왔다.

바이러스와 인간은 똑같이 아미노산으로 단백질을 합성해 몸을 유지하고, 당(糖)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와 ‘뜰 앞의 잣나무’는 똑같이 세포 분열로 몸집을 키워왔으며, 각각의 세포가 일하는 방식이나 그 형태도 큰 차이가 없다. 원생(原生)동물이 헤엄칠 때 쓰는 꼬리와 우리 신경세포의 줄기는 거의 같은 구조를 갖는다.

이 책은 다양한 생물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존방식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서 생명체가 가진 무한한 신비를 펼쳐보인다. 박테리아부터 흰수염고래까지 생물이 가진 ‘16가지 보편성’은 이 책의 기둥을 이루는 주 재료가 된다. 그러나 생물학 교과서를 꼼꼼히 들추면 집어낼 수 있는 내용들을 일관된 주제로 묶었다는 점만이 이 책의 매력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300여장이나 되는 컬러 수채화로 수놓아진 ‘그림책’인 것이다.

그림은 세포나 염색체의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도’ 구실을 하지만, 생명계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풍성한 비유로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역할도 해낸다.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꾸는 엽록체의 기능은 흥분한 남성들(수소 이온)과 여성 댄서(엽록체)가 춤추는 거대한 ‘무도장’으로 그려진다.

DNA가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은 네 가지 색깔의 빨래집게로 주문을 받는 패스트푸드점에, 하나의 자극이 큰 반응을 불러내는 ‘양성(陽性)피드백’은 솔로 아리아가 시끄러운 합주로 발전되는 오페라극장에 비유된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해 복잡한 개체를 이루는 과정은 ‘큰 솥에서 작은 솥으로 나누어 가며 끓이는 수많은 스프’로 그려진다. 생물학이나 생화학의 초보독자가 친근하게 세포 세계의 비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친절한 길잡이다.

생화학자와 일러스트레이터인 두 저자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거쳤다. 처음에는 과학자가 선생이고 화가가 학생이었지만, 뒤에는 역할이 뒤바뀌었다고 생화학자 호아글랜드는 고백한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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