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 입력 2001년 3월 2일 19시 11분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강홍구 지음/272쪽, 1만4000원/황금가지

고된 삶에서 비롯되는 피로는 커다란 시장 하나를 만들어 냈다. 피로회복을 위한 의약품이나 건강식품들, 혹은 헬스 광고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개혁 피로감’이라는 신조어가 여기에 정치적인 의미까지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피곤한’ 현대인들이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문화 레퍼토리’는 어떤게 있을까? 가장 접근이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것으로는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비용과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고급문화가 있다.

이 책은 대중문화에 싫증이 난 사람들과 예술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또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대중문화에 미처 포획되지 않은 것들과 예술로 아직 승화되지 않은 것들 사이를 천천히 산보하면서 기록한 한국의 B급 문화들이 그것이다.

그 자신 B급 예술가로서 미술계 안팎에 적지 않은 고정 팬들을 갖고 있는 저자 강홍구는 이미 1994년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이라는 스테디셀러를 통해 이번 책의 밑작업을 해 놓은 바 있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은 그가 골목과 옥상을 어슬렁거리고 붕어빵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또 아파트와 묘지를 오르내리며 직접 찍은 사진과 길지 않은 에세이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들이 이제 일상에 숨어있는 예술로 바뀌면서 그 영역은 확장되고 반대로 그 아이템들은 좀더 단단해진 것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과 사진들의 키워드를 골라보면 이미지, 공간, 권력, 신세대, 기억, 건축물, 페티쉬 등이 될 텐데 이들은 최근 문화연구에서 인기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키워드들을 난해한 이론적 논술로 풀어내기보다는 간명하고 위트 있는 에세이로 잡아내고 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신문 속에 끼어들어 귀찮기만 하던 광고 전단들이 갖고 있는 ‘귀여운’ 측면을 발견하게 되고, 길거리에서 우리 눈을 습격하고 있는 각종 플래카드와 간판들의 천민(賤民)적 속성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혹은 꽃 하면 떠오르는 소녀적 감성 뒤에 숨겨져 있는 엽기적인 인공성에 치를 떨기도 하고, 도심에 펄럭이는 만국기에서 축제의 분위기를 감지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일상의 피곤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리던 물건이나 장소들이 실은 아름다움 혹은 추악함으로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미술관이나 콘서트 홀에 가서 잠깐 향유하는 문화라는 것이 역동성과 현재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얼마나 시시한 것일 수 있는 지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일상 속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일상의 피로를 풀 수 있는 방법들 몇 가지를 알려준다. 그 지침을 따라 일상 아래로 낮게 포복하다 보면 피로는 억지로 푸는 게 아니라 저절로 사라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백지숙(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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