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초콜릿 '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33분


◇초콜릿/소피 D 코 외 지음/서성철 옮김/350쪽 1만4000원/지호

중미 코스타리카의 정글에서 처음 카카오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목련을 떠올렸다. 얼었던 강물이 채 풀리기도 전에 보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희고 커다란 꽃들을 이파리 하나 없는 마른 가지가 비좁도록 떠받치고 서 있는 목련.

이파리 무성한 가지들은 죄다 머리에 이고 실한 참외 크기의 열매들을 안쓰럽게 벌거벗은 나무 둥치에 매달고 서 있는 카카오나무. 둘 다 내겐 터질 듯 풍만한 몸매를 한 치수 작은 옷으로 가린 채 뾰족구두에 몸을 맡긴 여인의 모습 마냥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신들의 열매’라 불렸던 카카오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도무지 초콜릿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초콜릿은 처음에는 음료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옛날 중미에 살던 마야와 아즈텍인들이 마시던 초콜릿은 피를 상징하는 신성한 음료였다. 그들에게 천연두와 홍역을 선물한 대가로 유럽인들이 담배와 함께 가져간 초콜릿은 유럽에서도 어김없이 특권층의 음료로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초콜릿의 유럽 정복 역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갈증을 풀어주는 음료인지, 아니면 영양분을 함유한 음식물인지를 놓고 유럽 종교계는 200년이 넘도록 논쟁을 벌였다.

초콜릿에 대한 의학계의 해석도 결코 평탄하지 않은 역사를 거쳤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권력과 결탁한 그 검붉은 음료를 거부했다.

초콜릿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초콜릿의 사회학이다. 초콜릿이 어떻게 ‘신들의 음식’에서 대중의 기호식품으로 변해왔는가 하는 바로 그 역사 말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제1막에 등장하는 하녀 데스피나의 탄식은 이제 단돈 몇 푼이면 쉽게 해결된다. 산업혁명이 우리 모두에게 가져다준 복지의 선물이다.

이제 며칠 후 밸런타인데이가 오면 연인들은 서로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단 몇 초만에 혀끝에서 녹아 사라지는 사랑의 초콜릿과 함께 이 풍성한 ‘지혜의 초콜릿’도 함께 선물하면 어떨까. 초콜릿으로 만든 요리와 초콜릿이 등장하는 예술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물론, 그들을 통해본 세계문화사가 초콜릿빛 활자와 그림으로 꾸며진 맛있는 책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먼저 저술을 시작했다 끝내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남편이 써 바친 ‘밸런타인 데이 선물’이기도 하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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