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나도 아내가...>설경구 "티없는, 끼 많은"

입력 2001-01-04 19:10수정 2009-09-2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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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33)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평범한 주인공 김봉수와 너무 닮았다. 수줍음은 많고 말주변은 없다. 그 자신도 "봉수는 나다”라고 말할 만큼.

그는 많은 영화제에 초청됐지만 아직 단 한번도 빨간색 카페트를 밟아본 적이 없다.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때는 옆문으로 들어갔고 대종상 남자배우 신인상 수상땐 옆문을 못찾아서 카페트 가장자리 경호대열까지 무너뜨리며 옆으로 빠졌다. ‘단적비연수’를 찍을 땐 ‘야, 내가 지금 최진실과 이미숙 옆에서 뭘하고 있는거지’하는 생각에 수시로 얼굴이 벌개졌다.

얼굴을 팔고 살아야하는 배우로선 참 어이없는 약점이다. 그처럼 숫기없는 배우가 우리 영화계를 이끌 재목으로 꼽히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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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우가 됐는가하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전 배우 할 생각 없었어요. 연출하려고 연극영화학과(한양대 86학번)에 들어갔는 걸요. 대학 1학년때 연극에 첫 출연했는데 연출을 맡은 선배가 ‘무대위의 모습이 괜찮더라’고 칭찬해주는 바람에….”

썰렁했다. 하지만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남다른 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평범한 학생이었죠. 오죽하면 대학 입학원서 쓸 때 연극영화과 간다니까 담임선생님이 미쳤냐는 표정으로 절 쳐다봤겠어요.”

―그래도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은 ‘많은 수원지를 안고있는 사막같은 연기자’라고 칭찬하던데….

“안그래도 이감독님이 그 글을 쓴뒤에 저한테 전화하더라구요. 없는 말 지어내느라고 힘들었다고. 아마 제가 겉으론 참 건조해보여도 슬픈 장면만 보면 눈물을 주체 못한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쓰셨을 거에요.”

영화말고 취미는 뭐냐고 물었더니 “해가 진뒤 빈 운동장에서 지칠때까지 뛰면서 잡생각하기”라며 눈을 껌뻑였다. 속으로 흐흐하고 헛웃음이 나올 때쯤 불쑥 감독 얘기가 나왔다.

“저는 감독이 중요해요. ‘내가 저런 것을 어떡해’ 하나 싶은 것도 감독들이 끌어내느냐에 달렸으니깐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가 편안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박하사탕’을 찍을 때 이창동 감독이 원하는 연기를 얻기 위해 자신을 반실성 상태로 몰고갔던 얘기, ‘나도…’의 박흥식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채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바로 출연 승락한 얘기를 술술 털어놨다.

그제서야 그가 가다듬지 않은 원석 상태의 보석이라는 누군가의 표현이 떠올랐다. 이 평범해 보이는 남자의 재능이야말로 그 원석을 다루는 장인의 손길에 남달리 민감하게 감응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에겐 앞으로도 딱히 어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없다. 대신 “어떤 역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나를 작품에 녹여넣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화 아닌 인생이 궁금했다. 2남1녀 중 장남으로 4세된 딸을 둔 유부남이라며 말을 아끼는 그에게 18번이 뭐냐고 물었더니 ‘내가…’에서 봉수가 부르던 바로 그 노래, ‘서른 즈음에’와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란다.

마지막으로 삶의 경구로 삼은 대사가 있냐고 물었다.

“‘박하사탕’에서 영호의 대사,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에요.”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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