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전문가에게 듣는다]김철중 쟈딘플레밍부장

  • 입력 2000년 12월 30일 12시 49분


"내년도 한국증시는 올해보다 더 나쁠 것같다. 한국정부가 구조조정을 사실상 포기했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대량 매도가 우려된다. 정부가 각종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을 동원하겠지만 350포인트때까지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김철중 쟈딘 플레밍증권 투자분석가(Market Strategist)는 내년도 한국증시를 비관적으로 본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미국경제를 비롯한 세계경제의 성장률 둔화도 악재지만 무엇보다 한계기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쌍용투자증권에서 10년넘게 근무하다 쟈딘플레밍으로 3년전에 옮겼다.

-내년도 전세계 증시에 대한 쟈딘플레밍의 견해를 요약한다면.

"미국경제가 '거친 착륙(tough landing)'할 가능성이 높아 전세계 증시가 적어도 상반기엔 조정이 불가피하다. 내년 미국경제 성장률이 2%미만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것은 그동안 미국경제성장을 주도한 IT주식들이 약세를 나타낸다는 의미다.

미국경제의 성장률 둔화는 한국증시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반도체와 전자부품 위주의 수출구조가 상당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에게 내년도 한국비중을 축소하라고 권한다. 쟈딘 플레밍의 '신흥시장 포트폴리오'에서 한국비중을 올해 9.9%에서 내년 7.8%로 줄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내년도 한국증시를 밝게 보지 않는 이유는.

"아직 한국경제의 부정적 측면(Bad News)가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업구조조정에서 숨겨져 있거나 드러난 악재들의 심각성을 시장참가자들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미 구조조정보단 경기부양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옮겨가고 있는 것도 대형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한국기업들의 내년도 영업실적이 예상보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비중축소에 반영됐다. 가령 전세계 증시에 투자하는 대형 펀드들은 내년도 한국기업의 수익전망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우려감을 나타낸다. 우리 회사가 추정하는 내년도 삼성전자의 순이익(5조 4000억원)도 내년도 세계경제를 정확히 보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올해 외국인들이 11조 520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들이 내년에도 이같은 순매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한국정부가 올해 보여준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12월 현대전자를 대량 매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번 아니다'싶으면 대규모 손실을 보더라도 대량 매도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내년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다는 전망도 외국인들의 순매수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원화약세가 지속될 경우 매수보다는 매도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정부가 산업은행 등을 통해 만기도래하는 투기등급 채권을 80%까지 사주겠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조치가 주가반등을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한국증시는 이같은 미봉책으로 반등하기에는 이미 증세가 심각한 단계에 도달했다. 현대건설같은 한계기업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처방전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시장 안정대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겠는가. 올해 증시가 이같은 미봉책의 한계를 정확히 보여줬다고 본다.

또한 이번 정부조치는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악재가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기업부담을 정부부채(국민세금)로 이전하겠다는 발상은 한국의 재정적자규모가 OECD국가중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부부처에서 운영하는 각종 기금의 적자나 공기업의 적자 등을 감안하면 한국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이미 OECD 회원국들중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내년도 이같은 악재가 시장에 알려질 경우 한국증시는 또한번 큰 폭의 조정을 받을 것이다."

-한국증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투자유망한 종목을 추천한다면.

"내년도 투자유망한 업종은 '내수지향적이면서 성장성이 높은' 무선통신서비스업을 1차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SK텔레콤과 한국통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둔화에 대비하는 경기방어주로 음식료, 에너지, 유틸리티업종도 추천하고 있다.

반면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저성장산업이면서 경기에 민감한 업종들은 비중축소를 권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발표로 은행업종이 내년 상반기 국내증시를 주도할 것이란 주장이 있다.

"개인적으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현시점에서 합병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 시점에서 합병을 추진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두 은행은 부실은행이 아니고 합병을 통해 사실상 마미된 국내금융시스템을 정상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안된다. 두 은행이 합병이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한빛 평화 등 지주회사에 편입될 부실은행의 처리가 더욱 시급하다고 본다. 이들 부실은행을 신속히 해결해야 국내금융시스템도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은행합병이 성공하려면 시장이 성숙하거나 두 합병은행간 사세차이가 커야 하는데 국민과 주택은행의 합병은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자칫 감원과 조직통폐합도 지지부진한 채 '합병은행' 탄생만을 공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시국은 정치권이나 관료들이 '한건주의'를 내세울 한가로운 때가 아니라고 본다. "

박영암 <동아닷컴 기자> pya84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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