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김미현/왜 한해를 잊으려고만 하나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8시 40분


시간도 지문(指紋)을 갖는다. 상처나 추억처럼 고유한 무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때’는 단 한 번뿐이고,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이처럼 유일무이하거나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은 회상과 상상을 통해 재생되고 변형된다. 객관적인 시간을 주관화하려는 너무도 ‘인간적인’ 시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2000년’이라는 시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희망과 기대로 인해 화려하게 빛났던 조명이 벌써 꺼지려 한다. 언론들은 올해의 10대 뉴스를 발표하면서 인물이나 키워드로 한 해를 정리하느라 바쁘다. 이런 작업이 없으면 연말답지 않으니까.

▼반성하지 않은 잘못은 반복▼

사실 올해에는 힘든 일이 더 많았다.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이산가족의 상봉,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분명히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대란이나 잇따라 터진 대형 금융비리사건들, 구조조정으로 인한 먹구름이 그 빛을 덮어버렸다. 불행은 행복보다 우성(優性)이어서 더 잘 유전된다. 그래서인지 내년에 대한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물가나 세금은 오를 것이고, 고용이나 정치는 더 불안할 것 같다. 때문에 우리의 체감 시계는 ‘정오’가 아니라 ‘자정’에 멈춰 서 있다.

이럴 때 시간에 대한 착색이 행해지게 마련이다. 연말 연시를 맞아 과거와 미래에 황금칠을 하면서 따뜻하거나 듣기 좋은 말만 나누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례적인 의례를 최소한 올해만은 그만두자. 더 이상 위기를 기회라고 말하지 말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도 말하지 말자. 위기는 위기이고, 기회는 기회다. 고생은 고생이고 낙은 낙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충분히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어설픈 위안으로 해결될 위기나 고생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암담한 현실 자체가 그런 안이한 타협과 맹목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쉽게 분노했지만 길게 반성하지는 않았다. 화를 자주 내야 했지만 그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용서해서는 안될 일들까지 용서했다. 그러면 잘못은 고쳐지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는 자에게 가하는 시간의 최대 복수는 그 잘못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반복은 시간이 정지했음을 의미한다.

무선통신을 통해 과거와 교신한다는 비슷한 내용을 다루지만 전혀 다른 시간관을 보여주는 두 영화가 바로 한국의 멜로물 ‘동감’과 미국의 SF물 ‘프리퀀시’이다. ‘동감’의 시간관은 숙명론에 가깝다. 미래를 미리 알게된 여자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순순히 포기한다. 변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므로 실패조차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남자주인공도 자신의 과거(태생)를 그저 확인할 뿐이다. 반면 ‘프리퀀시’의 시간관은 훨씬 주체적이다. 과거의 아버지는 미래의 아들로 인해 죽음을 면한다. 현재의 아들 또한 새로운 변수에 따라 시간을 거스르면서 과거를 바꾼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감’에서 보이는 과거의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프리퀀시’에서와 같은 과거의 창조적 변용이다. 과거를 과거만으로 인정하거나 괴로운 과거를 잊으려고만 하는 것은 또 다른 과거를 미래에 세우는 일이다. 그 때의 미래는 구원이 불가능한 절망의 ‘25시’이거나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제8요일’일 뿐이다. 과거를 ‘오래된 미래’로 삼으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해야만이 미래는 개선될 수 있다.

▼과거의 시련통해 단련을▼

로마시대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더 우리는 앞으로 가기 위해 뒤를 잘 돌아보아야 한다. 최고의 예언자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라는 루비콘강은 건넜지만 ‘망각’이라는 레테의 강은 건너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절망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이 아니라 고통을 강철처럼 만드는 단련술인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보다 더 강한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우리의 시계는 이제 ‘잊는 시간’이 아니라 ‘기억하는 시간’에 맞춰져야 한다. 용서는 잊어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것이니까.

김미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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