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2000년 보내는 개미들 "악몽의 증시, 영원히 가버려라"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8시 36분


우리가 흔히 이별의 인사말로 사용하는 ‘아듀(Adieu)’는 프랑스어다.

아듀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영영 떠나보낼 때 보통 쓰인다. 곧 다시 만날 사람과 헤어질 때는 대개 ‘오 르봐(Au Revoir)’라고 인사를 한다.

올해 주식시장에 참여했던 ‘개미’들 가운데 상당수는 폐장한 주식시장을 바라보면서 ‘오 르봐’ 대신 ‘아듀’라는 인사를 건네고 있으리라.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의 도움을 받아 2000년 증시를 마감하는 개미들의 심정을 들여다보았다.

우선 후회가 주류를 이뤘다.

아이디가 ‘aries’인 네티즌은 “이 놈의 주식한답시고 매일 모니터만 쳐다봤더니 시력만 나빠지고 몸도 정신도 피폐해졌다”면서 “주식에 미쳐 장가도 못가고…이제 남은 며칠 동안 소주라도 한 잔하며 한 해를 반성해볼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이밖에도 “생각만해도 지긋지긋하다. 이 땅을 떠나고 싶어도 다 털려서 떠날 돈조차 없다”(콱스넷) “어떻게 1년도 안돼서 원금의 80% 이상을 날릴 수 있는가. 이런 땅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천사주식) 등의 한탄이 줄을 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질타도 꼬리를 물었다. 아이디가 ‘야상1’인 네티즌은 “내년엔 제발 정치권 사람들 정신차려달라”고 당부했고 ‘신총무’는 “경제관료들의 말바꾸기에 국민들은 믿고 비빌 언덕이 더이상 없다”고 개탄했다.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한 케이스도 눈에 띄었다. ‘이스탄불’은 “정부 관계자들은 연휴 기간중 놀러다닐 생각말고 확실한 증시 안정화 대책을 강구해야한다”면서 △거래세 인하 추진 △대통령의 긴급 주식 부양책 발표 등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차도량’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대통령, 야당총재, 국무총리, 정치인, 재벌기업인’을 수신인으로 한 뒤 “당신들은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특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망가지는 경제와 황폐해가는 국민들 마음을 생각하는 새해가 되길 빕니다”라는 글을 띄웠다.

‘동료 개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개미들도 있었다. ‘zaro’는 “내년에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모두가 본전찾아 행복해지시길…”이라는 글을 올렸고 ‘luck2001’은 “내년에는 모두 대박 맞고 근심 걱정없이 사세요”라고 기원했다.

‘정감록’이라는 네티즌이 올린 ‘수구수원’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같은 개미들의 온갖 상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구수원(誰咎誰怨).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모두 지나친 욕심을 부린 마당에 …여기서 욕심을 더 부리면 치명적일 수 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각자 자신부터 가슴을 쥐어뜯으며 반성하고,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보자.”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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