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체첸戰 14개월…'잊혀진 전쟁'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49분


‘잊혀진 전쟁.’ 14개월 동안 수만명의 사상자와 20여만명의 난민을 낳은 체첸전쟁은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졌다. 인구 80여만의 소국 체첸을 폐허로 만든 체첸 분리주의자와 러시아군 간의 ‘전선(戰線)없는 전쟁’은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군은 25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수도 그로즈니 등의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삼엄한 경계에 들어갔다. 체첸군의 연말 대공세 움직임으로 체첸 전역에는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체첸전을 빠른 시일 내에 끝내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추정하는 ‘반군’의 규모는 2000여명선. 이들은 험준한 카프카스산맥을 근거지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다. 또 러시아 전역에서 폭탄테러를 감행, 체첸에서 1만㎞ 떨어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테러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군은 3000여명이 전사했다. 민간인과 외국인들의 피해도 심하다. 체첸군은 전쟁이 터지자 국제적 관심을 끌기 위해 외신기자 등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당국은 올해만 외국인 7명을 포함한 164명의 인질을 구출했다.

전쟁의 여파는 주변국으로도 번지고 있다. 체첸군은 러시아군의 공격을 피해 그루지야의판키스크 지역에 은신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국경을 넘어 소탕전을 펼치려다가 그루지야와 외교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체첸전이 시작되자 러시아측에 제재를 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서방측은 최근 침묵을 지키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무력진압 의지를 확인한 데다가 푸틴 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원만한 관계에 있기 때문.

난민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유고내전이나 코소보 사태 때와는 달리 국제사회도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다. 난민들은 인근 잉구셰티야공화국의 난민촌에서 2주 동안 따뜻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 채 빵으로 연명하고 있다.

루슬란 플리예프 잉구셰티야 대통령은 “난민촌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밝혔다. 이미 500여건의 결핵이 발생했을 정도로 의료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러시아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남은 사람은 3만여명선.

체첸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리스 넴초프 러시아 우파연합(SPS) 당수는 23일 체첸의회 대표와 협상 끝에 평화를 위한 5개항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는 금주 중 푸틴 대통령을 만나 합의내용을 설명할 계획이지만 체첸 땅에 평화가 찾아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내년에도 체첸인은 ‘전화(戰禍)의 고통’ 속에서 희망없는 새해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