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영원한 문학청년’ 미당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36분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시인이 눈오는 성탄전야에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9월 황순원씨에 이어 우리는 또 문단의 큰 별을 잃었다. 소설과 시에서 각각 한국문학의 지평을 크게 넓힌 두 분의 타계로 우리는 문단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미당은 병마와 싸우며 “60년 동안 써먹은 가슴이라 심장이 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확실히 미당은 그의 넉넉한 가슴으로 반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의 토속정서를 시로 빚어내며 우리들의 고단한 삶에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다.

그가 남긴 1000편이 넘는 시는 우리말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쓰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가 된 ‘국화 옆에서’ 등 여러 편의 시가 교과서에 실렸고 우리 국민 중 그의 시 한두편 외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미당의 시세계를 얘기할 때면 늘 그의 지적 에너지가 빠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시세계를 이루면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시세계를 찾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그가 평소 수많은 곳을 찾아 여행을 하고 칠순에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던 것은 바로 하나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이는 후배 문인들에게도 하나의 채찍질이 되었다.

다 아는 것처럼 그에게는 늘 순수하게 문학에만 전념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따라다닌다. 일제강점기 하에 몇 편의 친일시를 쓰고 5공 정권 출범 때 협력한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그는 이에 대해 구구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히 이를 시인했다. 그리고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용서를 구했다. 고인의 이 같은 치열한 창작정신은 그를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시인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욕을 넘어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이 훨씬 많고 큰 것이다.

세상이 혼탁할 때 시 한편이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미당은 그럴 때마다 주옥같은 시로 우리를 울리고 웃게 했다. 어쩌면 지금은 그같은 시 한편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공백이 어느 때보다 커 보이고 이를 누가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미당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 문단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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