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청/서울대와 하버드대의 잣대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24분


학업성적은 좋지만 내신성적이 5등급에 해당돼 서울대 진학이 어렵다고 본 과학고 조기졸업예정자가 미국 하버드대와 MIT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자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낸 듯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한 여학생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전체적인 난맥상 차원에서 봐야 할 단적인 예이다. 수학능력시험 만점자가 특차에서 탈락하는가 하면 390점 이상 고득점자들도 특차모집에서 무더기로 탈락하는 일이 생기면서 물수능’‘수능인플레’‘수능대란’이라는 지적이 현실감을 갖게 됐다. 또한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는 학생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조국을 떠나는 학생도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재외국민과 외국인 특별전형의 비리와 병폐도 늘어나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요즘이라 교육시스템 전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창의성 교육과 지식기반사회와는 무관한‘한줄 세우기’식 획일적 입시제도가 낳은 병폐들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학의 선발방식과 하버드대의 잣대가 다르다는 반증이며 성적이 우수해도 시스템 때문에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내신과 수능, 면접, 논술 등 모든 전형요소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아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낳은 결과인 것이다. 내신이나 수능 성적만 좋아도, 또는 비교과 부분을 특출나게 잘해도 거뜬히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수능만점자가 낙방하고 고득점자가 특차시험에서 대거 탈락하는가 하면 홍보용 특별전형까지 가능한 입시틀이라면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국제경쟁력의 관건은 교육제도다. 대학입시의 틀은 교육제도의 일환이며 고급지식인재 양성의 관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획일적 교육제도와 입시제도가 교육의 100년 대계를 망친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 이상 교육제도에 절망해서 조국의 교육을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제 학부모든 정부든 고교와 대학이든 지식혁명시대에 걸맞는 교육시스템 복원에 동참해야 할 때다.

먼저 수능이 수학능력 측정시험인지 적성고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며, 이왕 시험을 본다면 수능은 수능답게 변별력을 갖추도록 제 위상을 찾아야 한다. 공부를 잘해도 불안한 제도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표준학력고사로 대체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고 표준학력고사의 성취수준이 높으면 내신을 보완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교차인정제도도 고려해봄직하다. 우수학생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특수목적고는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하며 특기 적성용 과외 등 전과목 과외가 불가능하도록 학교 중심의 특별활동을 활성화하는 등 공교육 시스템 전반을 보완해야 한다.

대학도 고등학교에서 어떤 학생을 배출하든지 선발한 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할 때다. 수능성적, 학생부성적, 논술성적 등 모든 전형점수를 합산하는 총점제 방식 도 개선돼야 하며 대학도 다단계 선발방식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전형제도를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선발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입시준비에 몰두했던 교육시스템 전반을 지식기반사회형 인재양성 시스템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우리 자녀들의 창의성 교육을 저해하는 한줄 세우기 교육은 교육학대 이며 우수학생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도록 교육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에 대한 교육방임 이다. 전형자료는 다양하게 요구하면서도 선발방식은 한줄 세우기식이어서 모든 것을 다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줄세우기식은 하루 속히 탈피해야 한다. 학력 적성 특기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대학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선발방식으로 따져보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 점이 하버드대와 서울대의 잣대가 다른 점이다. 하버드대의 잣대는 대학자율성과 창의성 그리고 잠재능력을 염두에 둔 반면 서울대 등 한국 대학의 잣대는 타율과 획일성 그리고 점수 위주라는 것을 직시해야 할 때다.

이현청(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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