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주우진/구조조정은 실업 줄일 보약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8시 39분


사회 전반에 걸쳐 고용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건설을 비롯한 건설산업의 위기, 대우자동차의 부도 및 인원감축 계획, 금융기관의 인수 합병,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가 그 배경이다. 연초만 해도 우리 경제의 소망이었던 벤처기업들이 금융 스캔들과 자금부족으로 하나 둘 쓰러져 가고 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자리에 대해 안심할 수 없게 됐으며 동료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부실기업 회생에도 필수▼

실업통계를 보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직후에 실업자가 150만명이었는데 내년 2월에 실업자가 11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기관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 경제는 다시 준(準)IMF 위기 국면으로 회귀하게 되며 대량실업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근로자를 포함한 구조조정 관련 이해 당사자들, 그리고 국민 모두는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제안이 필요한 듯하다.

첫째, 부실기업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없이는 결코 회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법칙과 마찬가지로 경제계의 몇 가지 부동의 법칙 중 하나다. 즉 우선 인력감축, 예산감축, 감량경영으로 막대한 비용유출을 막아야 미래에 대한 설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면서 실업 방지보다는 실직자 지원 쪽으로 노력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은 있으나 생계 자체를 위협받는 경우는 없는데 한국에서는 사회 보호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경제현실을 이해하면서도 정리해고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계기로 실업급여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회보호망이 최대한 개선돼야 한다.

둘째, 그래도 벤처산업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래산업 성장속도는 반도체 및 정보기술(IT)산업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년 2·4 분기에 재래산업은 8.5% 성장에 그쳤으나 반도체 및 IT산업은 42%나 성장했다. 코스닥시장의 침체로 벤처산업이 일시적 위기를 겪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고용 및 성장의 엔진은 역시 벤처산업이 쥐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일부 몰지각한 벤처기업가 때문에 정부의 벤처정책이 전면 수정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또 컴퓨터 교육에 중점을 둔 근로자 재교육을 지원해 재래산업에서 실직한 근로자들을 하이테크산업으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셋째, 재취업할 때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외환위기 이전에 근로자들은 연공서열 및 평생직장의 보호막 안에서 일했으나 21세기에는 불안정 자체가 일상이 돼버렸다. 즉 성과급, 연봉제, 프리랜서, 계약직과 같은 다양한 고용계약 체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기업은 아메바처럼 자신의 모습을 신축적으로 변형할 수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근로자들도 이런 변화와 다양성을 적극 수용하지 않으면 바로 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재취업땐 과거에 집착말길▼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의 어두움 속에서도 터널 끝에는 한국경제의 건강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난 40년 동안 무리하게 외형 위주로 성장했고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미봉책으로만 대응해 왔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모순을 단기간에 수술하는 데는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당장 이번 구조조정을 통과하기 위해서 20만명의 실업자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대졸자들의 취업난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 70명을 모집하였는데 7000명이 지원한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듯이 내년 봄까지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자금시장이 풀리고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면서 노동시장도 회복돼 내년 말까지는 실업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며 이번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만 근로자들의 복지가 장기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주 우 진(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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