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켜면 바로 뜨는 '꿈의 PC' 나올까?

  • 입력 2000년 12월 4일 0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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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주인공 톰 크루즈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작동하는 노트북 PC로 비밀지령을 받았다. 부팅도 하지 않은 채 켜지는 노트북 PC가 등장한 것.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허구라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세월이 흘러 ‘미션 임파서블2’가 한바탕 인기몰이를 하고 지나간 지금. 버튼만 누르면 곧바로 화면이 켜지는 ‘인스턴트 온(instant on) PC’는 여전히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일까》

▼부팅시간 단축 어디까지…▼

▽초(超)스피드시대에도 부팅시간은 요지부동〓마이크로소프트의 DOS 1.0버전이 처음 나온 것은 81년. 당시 PC에 장착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속도는 5㎒나 8㎒였다. 20년이 지난 최근 발표된 인텔 펜티엄4의 속도는 1.4㎓. 속도면에서는 무려 280배가 빨라졌다.

그렇지만 요지부동인 것이 하나있다. 다름 아닌 부팅 소요시간.

컴퓨터업계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 초라도 부팅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뤄졌다.

▽부팅이 뭐기에〓부팅이란 ‘부트스트랩(Bootstrap)’을 줄인 말. 구형자동차에서 시동을 걸 때 사용하던 가죽끈에서 유래됐다. 즉 부팅이란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것과 비슷하다. 컴퓨터가 각종 응용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과정인 것.

다른 점이 있다면 운영체제(OS) 메모리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등 컴맹들에게는 다소 낯선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직접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중개역할을 해주는 것이 OS다. OS는 램(Random Access Memory)에 자리를 차고 앉아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램은 전원이 없으면 모든 정보가 지워져 버리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전원이 없어도 지워지지 않는 곳에 있다가 전원이 들어오면 램에 자리를 잡는 과정(부팅)을 되풀이 해야 한다. 매일 산 정상에 바위를 굴려올려야 하는 운명을 떠안은 시지프스처럼….

▽부팅속도는 왜 빨라지지 않을까〓첫째 원인는 OS에 있다. 소프트웨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뒷받침할 OS의 크기도 함께 커지고 있다. MS―DOS 1.0버전의 파일용량은 약 1.4메가바이트 수준. 이에 비해 9월 선을 보인 윈도ME의 파일 용량은 550∼650메가바이트로 최소한 390배가 커졌다.

OS를 읽어들이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OS가 그 이상으로 커졌기 때문에 부팅속도는 단축되지 않고 있다는 것.

두 번째 원인은 하드디스크드라이브의 원시성이다. 하드디스크는 저장내용을 담은 원통이 고속으로 회전하고 바늘이 저장부위를 찾아내 읽어들이는 구조. 전자가 빛의 속도로 흘러다니는 컴퓨터 안에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기계가 있는 셈이다.

컴퓨터에서 하드디스크를 없애지 않는 한 부팅속도를 줄이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밖에 비디오 오디오 기능이나 주변기기가 많아지는 것도 부팅시간을 줄이는 데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인스턴트 온 PC는 언제 나올까〓값에 구애를 받지 않고 PC를 만든다면 당장이라도 인스턴트 온 PC를 만들 수 있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없애고 대신 메모리칩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PC 한 대 값은 터무니없이 비싸지게 된다.

개인정보단말기(PDA) 등의 OS로 사용되는 윈도CE처럼 OS의 크기를 줄이는 것도 방법. 이 경우는 PC의 기능이 대폭 축소된다. PC업체들의 숙제는 적당한 가격과 기능을 유지하면서 버튼을 누르자마자 부팅이 되는 ‘인스턴트 온 PC’를 만드는 것.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 심규태과장은 “앞으로 1년 안에 7초 이내에 부팅이 끝나는 인스턴트 온 PC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스턴트 온 PC의 개념을 ‘3초 이내에 부팅이 끝나는 PC’라고 좀더 엄격하게 규정한다면 현재의 기술로는 청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또 ‘7초 이내’라는 기준도 응용소프트웨어를 거의 설치하지 않는 초기 출시상태일 때의 이야기다. 인스턴트PC는 ‘미션 임파서블3’일까.

▼부팅의 심리-경제학▼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을 통틀어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PC.

사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PC를 켜고 이용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PC는 심지어 끌 때도 기다려야 한다. 부팅은 이런 심리적인 효과 외에 여러 가지 경제적 파급까지 만들어 낸다.

▽부팅의 심리학〓컴퓨터 이용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웹사이트가 뜨는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반응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윌리엄 스탈링과 리처드 반 슬라이크 박사가 쓴 ‘비즈니스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빠르다고 느끼는 시간은 3초 내외. 4∼10초까지는 ‘그저 그렇다’고 느끼고 10초를 넘어가면 ‘지루하다’고 느낀다. 15초를 넘기면 그 사이트를 다시 찾는 일이 뜸해진다는 분석이다.

컴퓨터 부팅시간은 웬만한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빨라야 1분 정도. 15초를 견디지 못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인기를 끌 리가 만무하다. 1∼3분은 너무나 긴 시간이다.만약 PC의 경쟁상대가 있었다면 부팅시간 때문에 PC가 도태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부팅의 경제학〓마이크로소프트나 PC제조업체들은 부팅시간을 이용해 로고 등을 띄워 광고를 한다. 올 한해동안 판매된 PC대수는 1억3000만대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한번 부팅할때마다 광고를 하는 셈이니 광고효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무료 인터넷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유선전화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전화의 보급속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음질이 나빠서’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 뒤 다시 서비스프로그램을 띄우는 지루한 절차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폰은 최근 PC를 켜지 않고도 직접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PC와 TV는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나 부팅속도라는 장벽을 띄어넘지 않는 한 PC와 TV는 절대 ‘일심동체’가 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케팅부 전준범과장은 “아무리 기능이 많은 TV라해도 화면이 나오는데 1분이상이 걸린다면 과연 팔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짧은 부팅시간이 필요한 기기는 기능을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PC는 부팅시간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기능을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각각 진화, 발전해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았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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