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s]최첨단 무대 세트 뮤지컬 제인에어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28분


뮤지컬 ‘제인 에어’의 시연회를 2주 가량 앞둔 10월의 어느 토요일, 브룩스 애트킨슨 극장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았다. 계획대로라면 이날은 무대 담당자들이 무대의 세트와 조명을 점검하는 기술 리허설이 열려야 했다. 그런데 좌석에는 아직도 세트의 조각들이 높이 쌓여 있었고 텅 빈 무대에서는 헤드세트를 쓴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이 뮤지컬의 세트 디자인을 맡은 영국인 존 네이피어 역시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면서 뉴욕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세트를 설치하느라 애를 쓰느니 고향인 영국에서 자기 스튜디오의 개조작업이나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력적이고 고집이 센 그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헬리콥터를 등장시키고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를 디자인한 사람이다.

다음달 3일 ‘제인 에어’의 공연이 정식으로 시작되면 관객들은 아마도 무대의 세트 디자인에 대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대 세트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성과 목공기술의 조화가 필요하며 작업 도중 갖가지 문제들과 작업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충돌을 겪어야 한다. 게다가 네이피어씨는 항상 전통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인 만큼, ‘제인 에어’가 넘어야 하는 장애물들은 보통 때보다 더 높은 것처럼 보인다.

네이피어씨는 이번 ‘제인 에어’의 무대에서 물이 흐르는 듯 유동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다며 “나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타나 공중에 뜬 것처럼 움직인 뒤 제자리에 놓이는 광경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무게가 2만4000㎏이나 되는 회전식 컨베이어를 만들어 무대 위에 띄워 놓았다. 무대의 막과 세트의 여러 조각들은 이 컨베이어에 매달린 채 회전하면서 제자리에 놓이게 되며 최신 조명기구들 역시 이 컨베이어에 매달려 무대를 비추게 된다.

물론 브로드웨이에서 무대를 회전시켜 장면을 바꾸는 기법은 오래 전부터 사용돼왔다. 그러나 ‘제인 에어’에서는 무대의 배경과 조명등이 사상 처음으로 배우들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게 된다. 게다가 보통은 무대 세트가 위 아니면 옆에서 나타나 무대 위에 자리를 잡는 데 비해 공중에 매달아놓은 회전식 컨베이어는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무대 설치물이 등장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제인 에어의 학교 친구가 죽는 장면에서는 무대 위에서 침대가 회전하는 동안 창문이 컨베이어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조명등과 함께 회전하게 된다.

이번에 무대 세트의 제작을 맡은 쇼모션의 윌리엄 멘싱 사장은 이 컨베이어를 가리켜 “아주 커다란 기술적 도전”이라며 “이 기계가 브로드웨이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수단으로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56세인 네이피어씨는 원래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런데 한 무대 디자이너가 그의 작품을 보고 여름 동안 자신의 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네이피어씨는 이 디자이너와 일을 하면서 무대 작업에 매력을 느꼈고 이어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 등에서 디자인을 맡았다.

'제인 에어’는 원래 이달7일에 시연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무대 작업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조명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조명등이 회전식 컨베이어에 매달려 돌아가기 때문에 많은 수학적 계산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무대장치가 마침내 무대 위에 정돈된 것은 8일이었다. 그날 극장의 객석에 놓인 탁자에서는 조명 담당인 줄 피셔와 페기 아이젠하워가 마치 우주선을 발사하는 사람들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어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면서 조명등의 위치를 하나씩 조정하고 있었다.

모두 630만달러의 제작비가 든 ‘제인 에어’는 이처럼 복잡한 무대 작업 때문에 시연회를 세 번이나 연기해야 했다. 따라서 제작자들은 드레스 리허설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채 9일 유료 관객들 앞에서 그냥 시연회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시연회 전날 저녁에 네이피어씨의 조수인 키스 곤살레스가 일을 그만두었다. 게다가 무대에 설치돼 있던 광섬유 케이블이 무대장치를 움직이는 동안 끊어져 버렸다. 시연회가 진행되는 동안 네이피어씨는 내내 연필과 종이를 손에 들고 메모를 하면서 긴장을 하고 있었다.

공연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직접 깨진 유리조각을 치워야 하는 순간도 있었으며 중간 휴식시간이 40분이나 되었다. 그러나 무도회 장면에서 배우들의 새틴 드레스가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멋진 유화에서 반사되는 빛을 받으며 소용돌이처럼 움직이는 광경은 정말 그림 같았다.

(http://www.nytimes.com/2000/11/17/arts/17JA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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