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드골과 박정희 동상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20분


“드골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72달러짜리 평범한 참나무관에 넣어져 딸 안이 잠든 향리의 묘소 옆에 안치됐다. 묘비명도 간단했다. ‘샤를 드골 1890∼1970’. 거인의 마지막 자취로는 초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1970년 11월12일 엄수된 드골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회고다. 드골은 이보다 3일전 향리 콜롱베에서 평소처럼 회고록을 쓰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드골은 자신의 장례식을 콜롱베에서 조촐한 가족장으로 엄수하라는 유언을 죽기 18년전에 이미 작성해 놓았다고 한다. 그는 정치인들이 괜히 장례식에 참석해 위세만 과시하는 게 싫다며 프랑스 위인들의 묘소인 판테옹에 묻히는 것도 거절했다. 유족들은 프랑스 정부가 장례식을 떠들썩하게 할까봐 정부측에 가족장을 공식화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은 팡파르도 조곡도 없는 평범한 농부의 장례식처럼 끝났다.

▷유족들은 그동안 평범한 자연인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던 고인의 정신을 받들기 위해 갖가지 추모행사들을 거절해 왔다. 그런 드골이 죽은지 30년만에 파리 한복판 샹젤리제 거리에 등장해 화제다. 1944년 파리 수복 당시 프랑스군을 이끌고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던 드골장군의 모습을 묘사한 동상이 최근 제막된 것이다. 2차대전의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구성된 자유프랑스재단이 마침내 유족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 드골은 다시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현신’한 것이다.

▷드골이 이같은 자신의 ‘현신’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드골은 회고록에서 ‘나는 내 모든 인생을 프랑스에 어떤 이상을 심어주는데 소진했다’고 술회했다. 샹젤리제의 드골동상이 프랑스인들에게 그같은 이상을 새롭게 해 주는 것이라면, 아무리 고인의 생전 생각에 어긋나는 것이라 해도, 유족들이 끝까지 반대할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정희전대통령의 기념관을 구태여 국고까지 지원해가며 서울에 세운다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는가 하면, 있는 동상도 끌어내려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남찬순 논설위원> chansoon@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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