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借名 여부 철저히 가려야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58분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둘러싸고 그동안 소문으로 나돈 여권 실세 4명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여야의 정치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정현준(鄭炫埈) 리스트’ 공개파문으로 정치권이 다시 극한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사태다.

엊그제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의원은 정현준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소문난 K, K, K씨와 P씨의 실명을 대면서 “맞느냐, 틀리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은 “거명된 사람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측은 권노갑(權魯甲) 김옥두(金玉斗) 김홍일(金弘一) 박준영(朴晙瑩)씨의 이름이 거론되자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한계를 넘어선 발언이라며 이의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측은 면책특권을 부정하는 것은 국회의 권위를 위협하는 처사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 정기국회 파행마저 우려되고 있다.

검찰총장이 여권 실세의 이름은 없다고 밝혔지만 의혹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는 것은 검찰의 ‘확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확인한 것은 정씨측이 제출한 명단에 지나지 않는다. 정관계(政官界) 인사가 정씨의 사설 펀드에 가입했다면 실명을 사용했을 리 없고 따라서 정씨측이 낸 자료에 이름이 없다는 검찰의 확인은 무의미하다.

검찰은 당연히 펀드가입자 653명의 차명(借名)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 뒤 여권 실세들의 관련 여부를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펀드 가입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여권 당사자들의 명예회복 차원에서도 정현준 펀드의 정밀 추적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물론 차명 가입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펀드 가입자를 불러 일일이 확인하고 그에 필요한 계좌추적을 하자면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검찰이 수사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검찰이 정관계 인사 연루설에 대해 계속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의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시중에는 검찰이 사설펀드 모집책 등으로부터 ‘정관계 로비’ 진술을 받고도 이를 감추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검찰은 더 이상 정치공방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도 이 사건의 수사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그에 따라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검찰이 바로 서는 길은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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