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달라이 라마도 못만나서야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34분


국내 종교인들의 달라이 라마 초청 계획에 대해 외교부가 최종적으로 ‘방한 불허’ 방침을 밝혔다. 본란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인 그의 방한이 외교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순수한 문화적 성격이므로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입장 표명에 따라 11월16일로 예정된 방한이 무산된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외교부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의 방한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방한을 허용하게 되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가 상당한 무역흑자를 내는 나라여서 외교관계가 악화될 경우 경제적인 손해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중국은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한반도 주변 4강’중의 하나다.

중국은 실제로 그의 방한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외교부는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상당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외교부 결정에 크게 실망하는 것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인간과 인간, 종교와 종교 사이의 자유로운 만남과 교류를 막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방한은 문화적인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수십년간 미국 일본 등 각 국을 방문해 자비와 용서, 사랑의 사상을 전파하며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해 왔다. 여태껏 그를 만나 본 적이 없는 한국인들도 그의 영적인 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려 하는 것이다.

그를 초청한 방한준비위원회가 종교인 등 민간 차원으로 구성된 것만으로도 이 사실은 쉽게 입증된다. 정부가 이를 막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며 국민에게 부여된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적으로 본다면 우리 스스로 ‘문화주권’을 포기하는 것이요, 자존심을 잃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자세는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문제만 해도 외교부가 내부적으로 허용 방침을 정한 뒤 장관까지 나서 중국에 ‘양해’를 요청한 후 허용의사를 공표했다가 중국의 태도가 바뀌자 다시 ‘불허 방침’으로 돌아서는 줏대 없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강대국이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나라라고 해도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 중대한 원칙을 지켜야 할 때는 당당하게 대처하는 게 큰 것을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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