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공은 둥글다지만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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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리그에서 한 경기 진 것 가지고 왜 이렇게 떠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외 보도에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축구대표팀이 아시안컵대회에서 와일드카드로 8강전에 오른 뒤 허정무 감독은 그렇게 말했다. 스포츠의 승패야 일상의 일이니 허감독의 그런 태도를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스포츠팬의 입장은 그와는 상관이 없다. 매 경기 결과에 환호도 비판도 할 수 있고, 감독 경질의 압력도 가할 수 있는 게 팬이다.

▷대표팀이 아시안컵 8강전을 통과하고 준결승에서 진 데 대한 팬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물론 비판적인 것이 많다. 전략과 전술 부재의 결과라느니, 한국축구는 아시아의 고양이로 전락했다느니 등도 그의 일부이다. 팬의 성화는 축구사랑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일본과의 비교 열세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은 올림픽 8강 진출에 이어 아시안컵 결승에 올랐고, 특히 아시안컵 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4―1로 물리쳤는데 우리는 준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2로 졌으니 팬의 속이 편할 리 없다.

▷사실 우리 축구는 답보 상태인 느낌이다. 1998년 월드컵이나 7월의 유로2000에서 나타난 세계 축구강국들의 힘과 기술에 스피드가 접목된 현대축구의 전형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형편인 듯 싶다. 2년 가까이 대표팀을 이끈 허정무 감독의 기록상 성적은 괜찮은 편이다. 대표팀이 10승 9무 3패를 했고, 올림픽팀도 시드니에서 2승 1패를 했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일본 경기 관중은 수천명이었음에 비해 한국 경기 관중은 수백명이 고작이었다. 우리 축구의 제자리걸음이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축구는 대책이 시급하다. ‘탈 아시아’ 수준에 접근했다고 평가받는 일본이나 급성장한 중국의 예도 참고해야 한다. 일본은 선수 육성과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이고, 1993년 J리그 출범이후 선진기술을 익히며 대표팀감독에 외국인을 기용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최근 잉글랜드가 축구 종주국의 자존심도 버리고 왜 독일 감독 영입을 꾀했을까. 축구계는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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