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2차訪北 불투명… 고령 이산가족들 '한숨'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9시 01분


11월초로 예정됐던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북한의 모호한 자세로 성사 자체가 불투명해지자 교환방문단 후보자로 선정된 이산가족 200명뿐만 아니라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고령 이산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당초 다음달 2일부터 4일까지로 예정돼 1주일밖에 안 남은 남북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사업은 생사확인과 방북교육 등의 추가일정을 소화하기엔 일정이 너무 촉박해 연기가 확실시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관심이 이미 미국과의 '직거래’ 쪽으로 옮겨가 있어 "이산가족 교환사업이 1회성 행사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후 한층 기대에 부풀었던 이산가족들은 "결국 이산가족은 정치적인 도구밖에 안 되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이산가족들의 심경 ▼

이산 1세대 홍진영씨(80·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요즘 북의 아내와 아들이 보내온 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일이 잦아졌다.

"91년 아내가 환갑 때 찍은 것이라며 보내준 사진엔 그래도 50년전 모습이 꽤 남아 있었는데 요즘 온 사진은 너무 늙어버려 알아보기도 어려워요. 이제 아내나 나나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거죠.”

90년대 초부터 중국과 일본에 사는 친구들을 통해 북의 아내와 두 아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있는 홍씨. 세월이 갈수록 북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 한번, '손’ 한번 만져보고 싶은 마음은 더해가고 있다.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에도, 이번 2차 교환방문에도 대상자로 뽑히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온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러나 북한측이 이처럼 소극적으로 나오면 죽어서야 만날 수 있겠어요.”

집안에서 누워지내는 시간이 많은 홍씨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고향인 평북 정주가 생생히 떠오른다. 어릴 적 마을 앞 어룡산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던 장면이며 동네 소학교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났던 큰아들 선식(당시 9세·가명)의 웃는 얼굴, 다시 둘째 선만(당시 3세·가명)을 안고 자신을 반기던 아내 정씨의 모습까지.

50년 12월 홍씨는 이 모든 소중한 것을 북에 남겨두고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1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는 부질없는 약속만을 남긴 채.

또 다른 이산가족 강민길씨(80·서울 강북구 수유동)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 50년 인민군의 횡포에 못 이겨 고향인 평양을 뒤로하고 무작정 내려왔지만 피란 중 헤어진 두 누님의 생사라도 알고 싶어 한다.

강씨는 "부모님과 누님들도 모두 돌아 가셨겠지만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고 누님 자식들 얼굴이라도 한번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는가. 왜 정부는 북에 강하게 말하지 못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 전망 ▼

전문가들의 향후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북5도 연합회의 홍성오(洪成五)사무국장은 "정부가 북한을 적극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양쪽이 이산가족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이산가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화여대 북한연구협동과정 박준영(朴俊英)교수는 "김정일이 대외적으로 선언했고 북한 내부적으로도 알려진 사업들이어서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산가족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북―미관계로 정신이 없는 북한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