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가로등 격등제' 도로불빛 어두워 사고위험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8시 46분


《서울시가 에너지절약 대책으로 시행중인 가로등 격등제가 에너지 절약효과에 비해 밤길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가로등격등제와 함께 실시되고 있는 유흥업소의 네온사인 소등은 관리관청의 지도부실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에너지 절약대책 자체가 서울시의 대표적인 전시행정 사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회사원 류제규씨(37·서울 마포구 염리동)는 요즘 야간 운전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가뜩이나 시력이 좋지 않은데다 가로등 격등제까지 실시되면서 도로가 어두워 얼굴을 차 앞유리창에 바짝 붙여야 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에는 아예 차선까지 보이지 않아 운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서울시가 에너지절약 대책으로 시행 중인 가로등 격등제가 에너지절약 효과보다는 밤길 교통사고의 위험만 높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가로등 격등제와 함께 실시되고 있는 유흥업소 네온사인 소등은 관청의 지도 부실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에너지절약 대책 자체가 서울시의 대표적인 전시행정 사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효과보다는 문제가 많은 가로등 격등제〓서울시는 10일부터 시내 11만5227개 가로등 중 절반 가까이 되는 4만5736개 등에 대해 격등제를 실시 중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건설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관리 지침’에 따른 도로 밝기(30럭스)가 현재 절반(15럭스)으로 어두워졌다. 결국 올림픽대로 등 8개 자동차전용도로를 포함한 271개 노선을 지나는 야간 운전자들은 그만큼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

교통전문가들도 가로등 격등제가 야간운전의 사고위험만 높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통개발연구원 설재훈 박사는 “도로의 밝기가 절반 가량 어두워지면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교통사고 위험도 30% 가량 늘어나게 된다”며 “차량이 많아 도로가 비교적 밝은 저녁시간에만 격등제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격등제가 유류 소비절약에 미치는 효과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간에는 전력수요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가로등을 켜지 않아도 에너지 절감효과는 별로 없다는 것.

한국전력 수요관리과 관계자도 “심야전력은 생산을 중단할 수 없는 것으로 소비를 줄인다 해도 에너지 절약 효과는 크지 않다”며 “야간에는 주로 원자력과 석탄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가로등 격등제를 실시하는 것과 유류소비 억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사치업소 네온사인 규제는 말로만〓24일 자정 무렵 유흥업소들이 밀집한 서울 신촌과 북창동 일대는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등이 밝혀놓은 네온사인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시가 가로등 격등제와 함께 밤 11시 이후 호화사치업소의 네온사인을 규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청소년 유해업소 합동단속반이 네온사인에 대해서도 계도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업주 입장에서는 네온사인을 끌 경우 영업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서울시의 지침을 따르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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