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김용희감독 '고민의 계절'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58분


그에겐 적어도 소신이 있었다.

94년 롯데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선이 굵고 정통파 야구를 구사하는 김용희감독(45)을 보고 많은 선배들은 “한국야구를 짊어지고 나갈 재목”이라고 했다. 롯데구단에선 ‘평생감독’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 김감독에겐 아무 색깔이 없었다. 그는 늘 불안해보였다. 선수단을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항상 이끌림을 당했다. 하긴 그가 처한 상황이 그랬다.

삼성감독은 누구나 탐내지만 또한 누구나 부담스러운 자리. 게다가 김감독에겐 그 중압감이 더했다. 우선 해태 김응룡 감독의 영입에 실패한 삼성 구단에서 짜낸 대안이라는 점이 탐탁지 않았고 친구를 밀어낸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오랜 친구사이인 서정환 전 삼성감독은 지난해 김용희감독에게 수석코치를 제안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자칫 지휘체계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손을 내민 셈이었다. 자신을 다시 야구판에 끌어들인 친구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김용희 호’는 1년 내내 ‘내풍’과 ‘외압’에 시달려야 했다. 선수들은 재능 있고 뛰어났지만 ‘꿰지지 않는 구슬’처럼 융합이 안됐고 1승 1승에 목을 건 구단 프런트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잔뜩 끌어다 모은 화려한 코치진도 별 도움이 안됐다.

정규시즌도 그렇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본 삼성야구는 더 안타까웠다. 마무리 투수 임창용은 한번도 써보지 못했고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각각 8억원씩을 주고 데려온 자유계약선수 이강철과 김동수는 ‘패전처리용 배터리’로 등장했다.

이렇듯 개성강한 선수단의 체질을 확 바꾸지 않는 한 삼성야구는 힘이 붙을 리 만무하다는 평가다.

김용희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 완패한 날 “올시즌은 끝났지만 내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고 했다. 과연 그는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대구〓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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