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결국 임의분업으로 가나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9시 12분


정부 여당이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해 사실상 임의분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상반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한다는 의약분업의 원래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노인의 경우 국민 전 계층 가운데 가장 많이 약을 복용한다. 노인이 약의 오남용 위험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부 여당의 정책변경은 언뜻 노인을 약의 오남용 위험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시행과정에서 사실상 의약분업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종합병원에 한해 시행한다는 식의 예외규정을 두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약계의 반발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환자의 상당수가 노인계층인 현실에서 동네 병의원도 수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둘째는 이런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에 따른 국민불편, 특히 노인환자들의 불편을 덜어준다는 의미에서는 현실적 방안이라는 것이다.

의약분업은 국민건강 극대화와 국민불편 최소화라는 서로 모순된 과제를 안고 있는 정책이다. 국민건강을 극대화하기 위해 완전한 의약분업을 할수록 국민불편은 높아진다. 반대로 국민불편을 줄이려 들면 들수록 의약분업의 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불편하더라도 완전한 의약분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을 줄이기 위해 환자의 선택에 맡기는 임의분업식의 불완전한 분업을 할 것인가는 결국 국민이 선택할 문제다. 정부와 의약계는 서로의 이해를 절충하고 수렴해 국민이 어떻게 선택할지 그 방안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의료파행은 애초부터 의료소비자의 선택권한은 도외시 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된 데 근본 원인이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의약계의 이해조정과 후진적 의료체계의 개혁, 시행 준비도 제대로 해놓지 않은 채 명분만 앞세워 밀어붙이는 과오를 저질렀다.

이번 경우만 봐도 그렇다. 오랜 의료관행이나 노인 환자의 의식, 후진적 의료현실 등을 감안했더라면 ‘65세 이상 노인 임의분업’은 미리 공론에 부칠 수 있는 문제였다.

앞으로 또 어떤 예외가 인정될지 모르겠다. 어린이 환자도 의약분업 대상의 예외로 해야 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최종안을 내놔야 한다. 언제까지 땜질식 대책만을 내놓을 것인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