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대호/稅收가 저절로 는다고?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34분


성경에 삭개오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직업은 세리(稅吏)였다. 당시 유대사람들은 삭개오와 같은 세리들을 가장 미워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리들이 인기를 끄는 일은 거의 없다. 힘들여 벌어들인 돈을 싹둑 잘라 가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는 게 사업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오죽했으면 춘향전의 이도령은 변사또 생일자리에서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라고 표현했을까. 세금으로 마련한 술은 온 백성의 피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은 당연히 필요하다.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세금으로 조성된 자금의 덕이다. 이런 대국적 관점에서 본다면 세리들을 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나라를 살리는 동량으로 받들어 모셔야 할 것이다.

세금을 내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많이 납부할수록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하는 셈이다. 기업인이 가장 애국자라는 미국과 영국의 격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일 게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세금을 낼 때는 고통스럽다. 세리들은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에 이른바 납세자 권리장전을 만들었다. 세제와 세정을 모두 납세자 위주로 바꾼 것.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국세청(IRS)의 최고책임자 자격을 신설한 사실이다. 반드시 거액의 세금을 낸 실적이 있어야만 국세청장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실제로 세금을 내 본 사람만이 납세의 고통을 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납세자를 위한 대단한 배려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주 당정회의를 갖고 내년도 예산의 시안을 확정지었다. 예산 규모가 101조원였다.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는 것이다. 말이 100조원이지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여기에는 물론 지방정부 예산과 특별회계가 빠져 있다.

돈을 조달하는 방법을 보면 자못 충격적이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바로 걷어내겠다는 규모가 87조원 선. 올해의 60조원선에 비해 무려 27조원이나 많다.

당국은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에 저절로 세수가 늘 것이라고 해명한다.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이미 경기 고점을 지났다고 경고하고 있다.

음성탈루소득을 많이 포착해 세수를 늘리겠다는 발표도 어색하다. 탈세를 막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올해에 포착하지 못했던 탈루소득이 내년에 느닷없이 발견될 수 있을까.억지로 세금을 짜내느라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나 않을까 두렵다.

정부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랏돈을 많이 지출하여 재정적자 상태이다. 이를 해소하자면 우선 많이 걷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국민의 형편부터 살펴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27조원을 더 걷겠다는 소식을 접한 국민은 질려 있다. 가계와 기업이 무너진다면 세금은 어디서 걷을 것인가.

김대호<경제부장>tige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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