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이총재, 기공식 참석하시지요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57분


나흘간의 추석연휴는 끝났다. 연휴기간 여야(與野)정치인들은 남북문제를 비롯한 여러 정치숙제들의 해법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했을 것이다. 얼마나 그럴듯한 해법을 구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다녀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꼬일 대로 꼬인 정치현안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이 어려운 국면을 타개해나갈 묘책을 강구하느라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이총재가 고심한 것 중에는 경의선 복원공사 기공식(18일 예정)에 직접 참석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당내에는 참석과 불참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불참론이 우세한 모양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참석하는 게 옳다. 일부 당직자 몇명만 보낼 게 아니라 이총재가 직접 참석해야 한다.

이총재의 남북문제에 대한 태도는 ‘총론은 지지, 문제점은 비판’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연세대 특강에서도 이총재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이 화해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같은 흐름이 시대적 대세로 자리잡도록 야당총재로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특강내용을 살펴보면 남북문제에 대한 이총재의 기본 생각은 ‘통일을 위해서는 평화정착과 자유왕래 실현’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총재의 입장이 이렇다면, 50여년간 막혔던 남과 북을 잇는 상징적 행사인 경의선 복원공사 기공식에 참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경의선을 복원하고 그 옆에 4차선 도로를 개설하는 것을 놓고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이것을 ‘평화정착의 길’을 여는 것으로 보는 시각과 이와는 달리 안보상 문제점(북한이 남침로로 이용할 가능성 등)을 부각시켜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부정적 의견의 핵심은 평화를 위한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길부터 열어주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남북관계의 본질인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 정착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양측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대부분 전시용 행사뿐이라는 야당의 비판은 수긍할 만하다. 아무리 인도주의라고는 하지만 비전향 장기수를 보내고 쌀도 60여만t이나 보낸다면서, 역시 인도주의 측면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확인도 못하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남북관계는 화해협력의 길로 가야 하고 이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런 현실은 이총재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자신감도 있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경우까지를 상정한 대응책을 빈틈없이 마련할 필요는 있겠으나 경의선을 ‘남침로로 악용될 것 ’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성싶다.

이총재가 뜻한 바대로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남북관계 업무를 인수받아 진전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원칙적인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국이 얼어붙은 것은 여야의 극심한 불신, 달리 말하면 여야 총재의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불신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 대화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도 이총재가 먼저 신뢰회복을 위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 방법을 남북관계에서 찾아보는 게 순리일 것 같다. 즉 남북관계에서 옳게 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두손을 들어 지지를 보냄으로써 김대통령의 불안 불신감을 누그러뜨리고 여유를 찾게 해보자는 것이다.

다만 이총재가 신념으로 강조하는 법의 원칙은 확고히 지켜야 한다. 어설프게 타협해서는 자신의 정체성만 잃어버린다. 날치기, 선거부정축소은폐, 권력을 이용한 대출압력의혹을 규명하려는 의지는 어떤 이유로도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이총재는 당 안팎에서 이른바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그 비난이 법과 원칙을 지키고 부정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고 해서 듣는 것이라면 그런 비난은 많이 들을수록 좋다. 그러나 판을 크게 봐야 할 대북(對北)정책에서 포용력이 부족하다느니 옹졸하다느니 하는 얘기를 듣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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