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모교사랑' 우정은 네트워크를 타고…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55분


그 녀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때 우리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언제나 티격태격했지만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같은 추억을 간직한 자들을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다시 자기 학교를 찾아 ‘모교사랑’(www.iloveschool.co.kr)에 ‘등교’하며 흐뭇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익숙한 20대 젊은이들 초등학교 동창생을 찾아 모이더니, 이제는 30∼40대로 확산되고 50∼60대나 10대까지도 찾아든다. ‘모교사랑’은 문을 연 지 10개월만에 회원 300만 명을 넘어섰고, 500억원에 인수된다는 설이 나오자 과대평가됐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동창을 만나고 싶어 솔직히 털어놓은 신상정보를 1인당 1만4000원에 팔아먹는다며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

그 많은 모임 사이트 중 학연만을 특화시켜 이런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옛 친구를 찾아주고 모임을 만들어 준다는 아이디어로 1700만 명의 회원을 모아 약 5000억 원에 팔렸다는 미국의 ‘이그룹스’(www.egroups.com)도 학연만으로 모인 ‘모교사랑’과는 성격이 다르다.

퉁퉁하게 몸이 불고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동창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모임에 안 나온 친구에게는 곧장 메일이 전달된다.

“다음 모임에 안 나오면 네 사망 신고는 내가 하기로 했다. ―마두―”

그 순수했던 시절의 꿈과 사랑과 우정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정신 없이 달려가고 있는 일상의 무상함, 부와 명예를 좇는 욕망의 공허함,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되새김질…. 철없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다 신랑신부가 되기도 하고 옛 추억을 더듬다가 ‘불륜’에 빠지기도 하지만, 여기서 느끼는 정은 직장 동료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끈끈한 그 ‘무엇’이다.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이른바 ‘가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공동체 중심적 성향을 상징하지만 산업화 도시화의 추세 속에 거주지 이동이 잦아지면서 혈연이나 지연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학연은 학교라는 이름 아래 사회화 과정을 함께 겪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데다 시공간의 제약도 별로 받을 일이 없는 까닭에 그 공식적 유대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공동체 통한 '자유' 실현

게다가 점점 더 치열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으로 몰아가는 한국사회의 각박함 속에서 이런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 참여가 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시장만능주의가 만족시킬 수 없는 우리 의식의 심연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의 실현조차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잘 아는 인간들이 공동체 자체를 포기할 리는 없다. 하지만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유주의에 맞서 주장했던 것은 가족과 집단과 국가에 대한 헌신과 의무의 소중함, 그것의 궁극적인 이익,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 등이다. 거기에 학연에 기초한 동창회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 사회의 미비된 사회안전망이 메우지 못하는 빈 공간들을 주로 혈연과 지연이 메워 왔다면 이제 그 틈을 학연이 메워 줄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패거리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학연이 가질 수 있는 비도덕적 유착관계는 인터넷 통신이라는 강력한 비판적 도구와 학창시절의 순수한 마음이라는 도덕적 기준이 결합됨으로써 통제를 받을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옛 기억으로 서로의 현재를 점검해 주는 우정이 네트워크를 타고 훈훈하게 번지고 있다.

김형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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