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 기업관행부터 고쳐야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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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주일간 우리 경제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던 현대사태가 채권은행단과 현대간의 합의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현대와 채권은행단이 13일에 합의한 내용은 그동안 난제로 꼽혔던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 매각과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주식 처분 등을 포함하고 있어 앞으로 이행과정이 주목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동차 부문이 계열분리되게 됨으로써 그동안 현대에 악재로 작용해 온 몽구 몽헌 형제간 갈등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합의안대로 추진된다면 1조5000여억원의 현대건설 부채가 줄어 자금시장의 경색도 어느 정도 풀어질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오너 일가의 퇴진은 그것이 최선의 방안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현대가 시장에 한 약속이다. 오너가 경영인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 평가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기업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든 측근 경영인에 대한 처리는 적법절차를 거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가 그동안의 잘못된 기업관행을 고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경영방식 등 부정적 기업관행을 고치지 않고 유동성 문제만 해결한다면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될 수 있다.

내면적으로 채권단과 현대간에 어떤 내용의 물밑 협상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일단 현대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채권은행단이 합의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지금부터 합의의 한쪽 당사자인 채권단의 책임은 무거워지게 됐고 향후 후속처리 과정은 새로 들어선 정부 경제팀의 능력을 검증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판단이다. 현대가 그렇게 많은 자금을 확보해 빚을 갚는다 해도 금융기관이 지속적으로 자금을 회전시켜 주지 않는다면 견뎌낼 수 없다. 금융기관의 지원 여부 결정은 현대가 시장에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에 달려 있고 이는 전적으로 현대의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자금시장이 정상화되고 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제거되기를 기대한다. 현대로서도 이번 합의가 기업회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경영개선계획을 진솔하게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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