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 /후퇴의 미학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46분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간척사업은 복음인가 재앙인가.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들 간의 끝없는 논쟁거리다.

사업 중단 여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인 새만금 간척사업도 그중 하나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주말에도 생태계 보전 등을 내세워 사업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사업을 시행해온농업기반공사는 지금까지 투입된 1조251억원의 막대한 국고손실을 우려했다.

그동안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온 민관 공동조사단은 개발과 공사중단 사이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이 같은 어정쩡한 상황은 또다시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여러 현안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방식이 탄력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는 한번 사업을 시행하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억지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하면 된다’는 일종의 군사문화가 작용하고 있다.

우선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위쪽의 책임추궁이 두렵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이 엄청나 이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계속돼 온 사업을 중단하면 이를 맡아온 조직은 없어지고 그만큼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걱정도 많다.

이는 기본적으로 실수를 용인하지 못하는 한국의 조직문화와 연결돼 있다. 지금까지 해온 사업에 문제가 발견돼 중단하기로 했다면 누군가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부터 할 것이다.

이를 막자면 실패를 인정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일을 하지 않아 아무런 실수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일을 해서 실수를 하는 쪽이 점수를 많이 받아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지금 여러 곳에서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해안 곳곳에서 진행되는 간척사업, 산과 평야를 파헤치는 건설공사, 강을 넓히는 운하공사 등 앞으로 시작될 사업도 많다.

이중에는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할 사업이 적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진행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나고 결국 국민손실로 이어지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환경은 환경대로 망치고 빚은 빚대로 진다는 지적도 많다.

H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정부가 동강댐 건설 백지화를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냈다”며 “현재 진행중인 공공 개발사업을 종합적인 측면에서 긴 안목으로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는 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해온 일에 대해 문제가 발견됐을 때 이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 역시 국민을 위한 것이다.

어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뿐일까. 정당이나 기업 민간단체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치가 잘 풀리지 않은 것은 한번 결정한 것은 절대로 바꾸지 않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법 날치기통과와 이후 전개된 정치상황이 꼭 그렇다.

의사들의 폐업투쟁은 어떤가. 전공의에 이어 7일부터는 전임의까지 폐업에 참가한다고 하는데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후퇴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후퇴는 아름답다.

송영언<이슈부장>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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