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진실된 '인간'에 판사도 동정심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07분


‘범죄자’가 아닌 ‘인간’을 보려는 법원의 색다른 시도 덕분에 어머니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소매치기를 했던 한 노점상이 7년간의 청송교도소 생활을 면하게 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대휘·金大彙부장판사)는 지나가던 행인의 가방을 찢고 돈을 훔치려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동일피고인(28)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검찰측의 보호감호 청구는 기각했다.

김씨는 92년 절도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96년과 98년 각각 징역1년6월씩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상습 절도범(전과 3범).

99년 8월 교도소에서 나온 김씨는 지난 5월 5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 역에서 행인 정모씨(여)의 가방을 면도날로 찢다가 미행중인 경찰에 검거됐다.

검찰은 김씨가 다시 몇 년의 징역형을 살고 사회에 나오더라도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며 청송교도소에서 7년간 보호감호토록 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범죄자’로서의 김씨는 거의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법정에서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흐르는 눈물보다 재판부의 요구로 김씨가 자필로 쓴 ‘피고인 성행 및 환경 진술서’였다.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의 김씨가 담겨져 있었다.

72년에 태어난 김씨는 한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열악한 환경 탓에 나쁜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88년부터 ‘소년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번의 교도소 생활을 거듭하는 동안 어머니는 지병인 관절염을 앓게 됐고 치료비 때문에 1000만원의 빚이 쌓였다. 김씨는 99년 출감후 어머니가 하던 노점상을 운영해 이중 500만원을 갚았지만 나머지 돈을 값을 길이 막막했다고 적었다.

“그날도 취직자리를 알아보려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집을 나서다 돈이 없어 관절염 부위에 파스를 붙이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심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김부장판사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노모에게 효도하겠다는 김씨의 다짐을 일단 받아들였다”며 “내가 본 ‘인간’ 김씨의 모습이 참이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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