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 고비 넘겼다지만

  • 입력 2000년 7월 30일 18시 45분


현대건설이 유동성 부족에서 비롯된 고비를 일단 넘겼지만 현대를 바라보는 국내외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자금난의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라 계열사에서 빌리고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하는 방법 등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여전히 신규 자금 지원에 목말라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유동성 위기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조속한 계열 분리를 통해 상속을 둘러싼 싸움을 끝내야 하고 둘째, 알짜 기업을 파는 등 강도 높은 자구 계획을 마련하고 셋째, 자금 사정 등 경영 상태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그룹이 내놓은 자체 구조조정 계획에는 형제간 분재(分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략적 차원의 것이 많았음을 스스로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그룹은 5월말 3부자 공동 퇴진을 선언하며 전문 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대의 전문 경영인들은 사주인 정씨 일가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가신(家臣)에 불과하다. 전문 경영인의 거취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결정되는 것이지만, 이런 판이니 채권은행단과 금융감독기관에서 가신 퇴진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장에서는 현대의 지배구조 개선 약속이나 구조조정 계획을 더 이상 믿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현대중공업이 서울민사지법에 현대증권과 현대전자 등을 공동 피고로 낸 소송의 내용도 계열사간 부적절한 자금 지원의 대표적 행태다. 경영 실적이 양호한 회사를 물고 들어가는 이런 식의 지원을 없애기 위해서도 계열 분리는 빨리 이뤄져야 한다.

현대자동차의 문제도 현재 잠복 상태이고 양측이 경영권 장악을 위한 지분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시장의 최대 악재인 현대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계열 분리가 매듭지어져야 한다.

그룹 내부의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은 당장 수익이 나기 어려운 대북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발표를 거듭했다. 이러한 것도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현대그룹에 질질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현대그룹의 위기는 한 재벌의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대우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을 못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만의 하나 대우가 걸었던 길을 가게 된다면 그것은 국가적으로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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