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학부모-교사 갈등 어떻게 푸나

  • 입력 2000년 7월 24일 18시 47분


‘자식 둔 죄인’이라 했던가. 학부모들은 자녀가 교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교사들도 학부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과 분쟁은 교육 현장을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

▽실태〓초등학교 2학년생 아들을 둔 주부 이모씨(서울 강북구 번동)는 자다가도 몇 번씩 벌떡 일어난다. 아들이 담임 교사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생긴 변화다.

“○○가 수업 중 떠들다가 선생님의 발에 채여 데굴데굴 굴러 복도로 나가떨어졌대요. 선생님이 ○○를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 못 들어오게 했다는군요.”

이씨는 학부모의 서명을 받아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학교측은 학부모들에게 “문제가 불거지면 아이들만 손해”라며 회유했다.

경북 A초등학교 체육교사 김모씨는 만신창이가 됐다.

97년 3월 복장이 불량한 6학년 여학생의 뺨을 때린 것이 화근. 김씨는 치료비로 200만원을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를 거절한 뒤 상해 혐의로 고소됐다. 김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6월을 선고받고 항소해 지난해 6월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으나 학부모는 올 3월 38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김씨가 소송에 끌려다니는 사이 아내는 김씨 곁을 떠났다.

초중고교에서 학부모와 교사간의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학부모상담실에는 체벌이나 촌지요구 등으로 고민하는 전화나 편지가 매달 30∼40건씩 들어온다. 한국교총의 교사상담실에도 올 상반기에만 학부모의 폭행과 명예훼손을 하소연하는 상담이 56건 접수됐다. 전국 곳곳에서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지만 상대방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요원하다.

▽덮기가 능사〓학부모나 교사들이 우선적으로 도움을 호소하는 학교나 교육청은 ‘조용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피해자들에게 절망감만 심어주고 있다. 이들이 최후로 법에 호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부 김모씨는 서울 S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 문제로 5개월간 학교와 지역 교육청을 드나들다 지쳤다. 학기초부터 담임 교사는 김씨에게 “○○가 좋은 자리로 바뀐 것 아느냐?” “○○가 맛있게 먹었다는 동그랑땡을 하나만 먹어보고 싶다” “어떤 학부모는 도시락을 예쁘게 싸왔더라”는 등 무언가를 요구하는 말을 많이 했다.

김씨는 ‘피해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학교장에게 ‘담임 교체’ 등 시정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 교육청에 진정서를 냈지만 담당자는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을 뿐이다.

대전 B초등학교 여교사 박모씨는 급우를 괴롭히는 1학년생의 손을 지휘봉으로 때렸다가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뺨을 맞았지만 학교장은 박씨에게 “그냥 참으라”고 했다. 교육청도 박씨만을 탓했다.

▽대책〓전문가들은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우선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면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들을 중재하거나 조치해 갈등이 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지희(尹智熙)참교육학부모회장은 “교원 예우 규정에 따라 학교마다 학교분쟁조정위원회를 둘 수 있으나 학교장이 위원을 위촉하도록 돼 있어 공정성을 의심받는다”면서 “학교나 교육청 단위의 투명한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성보(沈聖輔)부산교육대 교수도 “학부모와 교사가 갈등을 해소해 서로 믿고 의지해야 참된 교육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서 “각 학교의 실정에 맞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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