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석]행운을 몰고 다니는 이만수

  • 입력 2000년 7월 21일 17시 24분


"행운을 몰고 다니는 이만수, 이젠 그가 무슨 행운을 몰고 올까? "

한시대를 풍미했던 전 삼성라이온즈 이만수씨 만큼 운이 좋은 사람도 드물다. 특히 그는 야구운 만큼은 타고났다.

한양대 재학시절인 지난 80년 이만수는 동경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포수로 선발됐다.

대학에서는 꽤나 이름이 난 선수였지만 그 당시 같은 포지션인 심재원, 유승안이라는 기라성 같은 선배포수들에 비하면 실력이 한참 모자랐다.

예상대로 대표팀에 뽑혔지만 주전자 당번이었다.

포수 마스크는 커녕 대타로 딱 한타석만 나갔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82년 정부가 병역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시행령을 개정, 운동선수에게도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80년 세계선수권대회 공동준우승 멤버였던 이만수는 소급적용을 받아 군 입대가 면제됐다. 만약 대타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면제 헤택을 받지 못했다.

이만수의 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1호홈런과 타점을 올려 역사에 길이 남는 기록을 남겼다.

물론 노력이 뒷받침 됐지만 83년 페넌트레이스 MVP를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타격 트리플 크라운(타율 홈런 타점 1위)의 대위업을 달성했다.

지난 97년 은퇴할때만해도 이만수의 운은 사그러드는 듯 했다.

외국연수 비용을 놓고 구단과 티격태격하다 결국 코치직 보장도 받지 못하고 98년 자비로 야구 유학을 떠났다.

한국최고 야구 엘리트가 미국에서는 바닥생활을 했다.

말이좋아 코치지 싱글A팀을 따라 다니면서 배팅볼 던지기 등 굿은 일을 도맡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행운은 이만수를 향해 미소짓기 시작했다.

지난해말 보스턴 화이트삭스는 가끔씩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불펜보조코치를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리가 이만수가 가장 적임자로 꼽혀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코치가 됐다.

영어가 되지않는 그것도 미국야구 출신이 아닌 사람이 메이저리그 코치가 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이만수는 해낸 것이다.

이만수는 2~2년뒤 귀국, 한국야구를 위해 일할 생각이다. 그때는 무슨 운이 따를지 기대된다.

http://www.enter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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