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말괄량이 친구 '삐삐 롱스타킹'

  • 입력 2000년 7월 14일 18시 45분


저는 삐삐 롱스타킹(Pippi Longstocking)이에요. 왜 롱스타킹이냐구요? 옛날에 저를 만든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의 어린 딸이 병석에 누워 있다가 불쑥 이랬대요.

“엄마,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 해주세요.” 그래서 할머니는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게 바로 제가 된 거예요.

그래요, 저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사는 아이예요. 너무나 제멋대로죠. 큰 집에 혼자 살면서, 학교에도 안 가고, 돈은 펑펑 쓰고, 사탕이나 실컷 먹고, 순경 아저씨들을 내동댕이치고, 그러거든요. 1945년 스웨덴에서 제가 처음 나왔을 때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대요.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애가 어디 있냐구요.

하지만 전 억울해요. 저는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환상 속의 인물이잖아요. 톰 소여처럼 있을 법한 아이도 아니고, 빨강머리 앤처럼 모범이 될 만한 아이도 아닌, 환상 속에서 재미있게 놀게 해주는 아이 말예요. 사람들에게 각자 역할이 있듯이 문학 속의 인물도 하는 일이 각각이랍니다. 제 역할은요, ‘권위에 도전’하는 거래요.

하지만 경찰관, 선생님, 서커스 단장 같은 어른들한테만 도전하는 건 아녜요. 심술쟁이들, 황소, 도둑, 심지어는 불까지도 저한테는 꼼짝 못한답니다. 버르장머리없이 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멋있는 일도 많이 한다구요.

조그만 여자아이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구요? 그러니까 동화죠! 동화 속이니까 모든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고, 환상 속 놀이의 즐거움을 실컷 누리게 해주는 거예요. 이건 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아이들 안에 자기도 모르게 쌓이는 공격성을 이런 놀이를 통해서 해롭지 않게 풀 수 있으니까요. 스트레스는 어른 전용이 아니죠. 아이들도 살면서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걸 풀 길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 스트레스 해소를 힘과 돈으로가 아니라 ‘말’로 보여준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물론 제가 힘 세고 돈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모두 말, 즉 생각에서 나오거든요. “삐삐는 ‘들어올리겠다’고 생각하면 말 한 마리를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라는 대목이 대표적이죠.

제가 얼마나 ‘가공할 만한 언어구사력’을 발휘해서 세상을 재미있고 활기 넘치고 새로운 곳으로 만드는지 보세요.

린드그렌 할머니에게 노벨상을 주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답니다. 순전히 동화만 쓴 작가에게 노벨상이라! 멋지군요. 그 정도면 어른들도 이제 제법 철이 들었다고 할 만하네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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