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종석/개혁…經協…미적댈 시간없다

  • 입력 2000년 7월 2일 19시 20분


국민 노릇 하기도 힘이 든다. 외환위기 이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살아 온 우리 국민이다. 월급 깎이고,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면서도 나라 구하는 일이라면 금반지, 은수저까지 꺼내들고 나섰던 우리 국민이다.

▼정부 위기관리능력 의문▼

이제 겨우 위기를 넘기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대우 파산으로 또 한번 숨통이 조이고, 철없는 ‘왕자’들의 재산 싸움으로 시작된 현대사태는 유동성 위기로 이어져 우리 경제를 또다시 흔들고 있다.

계속되고 있는 금융시장의 불안은 자금대란으로 이어져 연쇄부도 등으로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의료대란은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있는 국민을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란의 소용돌이 속에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은 가뭄 끝의 소나기 같은 청량제였다. 그러나 이 감동의 드라마도 대미는 혼란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우선 놀라운 것은 그 동안 뿔 난 괴물쯤으로 배워 왔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예의바르고, 통큰 인물인데다 식견까지 갖춘 지도자로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공은 국시’를 주문처럼 외우고 살아온 세대로서는 참으로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북측은 ‘감동’만 연출하고 출연료와 제작비 등 제반 비용은 모두 우리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 비용의 규모도 도무지 가늠이 안될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경제가 그 부담을 견뎌낼 여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국민으로 하여금 과연 이 정부에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부 정책이란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각종 위기에 대해 즉흥적 대증요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금(資金)대란은 바로 정부의 무원칙한 정책에 대한 시장불신의 결과이다. 의료대란도 정부의 미숙한 대응자세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정부는 민생문제에 관해서는 최소한 국민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갖고 사태에 임해 어떤 경우라도 의료서비스의 중단만은 막았어야 했다.

정부 각료들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지금까지의 사태는 우연의 결과만은 아닌 듯 싶다.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없다”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국방부의 반박이나, 북측의 순안공항 영접에 관한 통일부 장관과 차관의 상반된 주장은 그들의 자질을 논하기에 앞서 정부 내부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걱정하게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 없이 어찌 효율적인 정책 입안과 실행이 가능하겠는가. 경제각료간의 갈등과 경제각료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간의 불협화음, 외교와 통상의 마찰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시중의 필부(匹夫)들조차 걱정하는 수준에 와있다. 이런 정부조직의 문제점은 하루바삐 시정돼야 한다.

이제 정부는 그 동안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해야 한다. 정권 출범시 약속한 공공, 금융, 노동, 기업 등 4대 부문의 개혁을 완료하고 남북경협 문제도 매듭지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자금 경색 현상이나 현대사태도 따지고 보면 개혁이 미진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런 시점에 금융노조는 11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의 개혁의지와 조정능력이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셈이다. 정부의 정책은 신뢰가 생명이며 신뢰는 원칙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4대부문은 대통령이 챙기길▼

최근 대통령은 ‘경제문제는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직접 챙겨서 될 수만 있다면 4대 부문의 개혁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기를 권유하고 싶다. 시간이 없고 더 이상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장관들의 국정수행을 뒤에서 감독, 평가만 하고 있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정권의 공도, 과도 모두 대통령의 몫으로 남게 된다.

현안은 산적해 있는데 정권의 임기는 어느새 후반기로 접어들고 있으며 권력 누수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복지부동하고 있는 관료들을 질타하여 개혁을 완성시켜야 할 때다. 일은 영이 설 때 마무리지어야 하며 지금이 그 마지막 기회다.

이제 국민은 대란도, 혼란도 없는 나라에서 좀 편안하게 살고 싶다.

예종석(한양대교수·경영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