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내란재판부법에 숨겨진 ‘조희대 탄핵 코드’

  • 동아일보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법’은 여당이 보더라도 위헌 소지가 커 본회의 표결 전에 다시 한 번 고치겠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1심 선고 전에, 10개월 넘게 재판을 이끌던 재판부를 갑자기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법정 밖 외부 관전자인 입법부가 재판을 지켜보다가 선고 결과가 예상과 다를 것 같다며 심판 교체에 나선 것이다. 사법 역사상 전례가 없던 ‘신종 입법’이다.

與 법사위의 충동적, 정치적 ‘신종 입법’


국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75쪽 분량의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노골적인 입법 의도가 보인다. 검찰 출신 여당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맡고 있는 지귀연 재판부가 ‘만담 재판’을 하고 있다면서 “저는 1심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재판부에서 했던 변론 과정은 모두 내란전담재판부에서 한 걸로 본다든가 이런 간주 규정을 두자”고 한다. 기존 재판부를 배제하되, 새 재판부가 재판 절차를 처음부터 갱신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판을 진행한 법관, 결론을 내는 법관이 각각 달라지는 모순이 생긴다. 법안심사소위 일주일 전 법사위 소속 다른 여당 의원은 “1심에 도입하면 재판 도중 재판부 교체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2심부터 도입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라고 했다. 결정적 흠결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당은 왜 충동적으로 2심이 아닌 1심부터 적용한 걸까. 공교롭게도 올해 7월 윤 전 대통령의 재구속 심사를 앞두고 관련 법이 발의됐고,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구속영장 심사 전날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이러니 사법부 압박용이라는 정치적 의도에 더 힘이 실리는 것 아닌가.

법률적으로 본다면 이 법의 한계는 뚜렷하다.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때 사실상 같은 내용의 법안이 추진됐다. 하지만 특정 사건의 재판부를 법원 외부에서 추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고,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를 허용했던 3번의 사례가 모두 법률이 아닌 헌법의 부칙에 근거한 것이라는 이유로 없던 일이 됐다. 두 달 전 내란 재판에도 특별재판부를 적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졌을 때 판사 출신 여당 의원은 “헌법 개정 없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재판 구성 자체가 위헌이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내란전담재판부법은 본회의 통과 즉시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부터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관련 재판이 중단되는 등 득보다 실이 더 큰데 여당은 왜 멈추지 않을까. 법안에는 ‘대법원장이 추천위의 추천을 받은 날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판사를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다. 법원행정처장은 외부 기관의 법관 인사 개입에 대해 이미 “1987년 헌법 아래에서 누렸던 삼권분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라고 했다. 대법원장이 그런 법률을 따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 경우 대법원장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인다. 오욕의 선례를 남긴 것에 책임지고 사퇴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절차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저항한다면 여당으로선 법률 위반으로 대법원장을 탄핵할 빌미로 삼을 수도 있다.

재판 이유로 법관 압박, 군사정권 시대 유물

사법부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대선 후보에 대한 대선 직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선고 등 사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선 판사가, 그리고 대법원장이 재판 내용을 이유로 권한이나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압박을 받는 일은 사법부의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고, 우리 사법부의 역사에서도 군사정권 시대에나 있던 오래된 유물이다. 100만분의 1이라도 유사한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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